# 남북통일 기원처 서희 선생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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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북면 후리에 있는 서희 선생 묘소(경기도 기념물 제36호)는 남북통일을 앞두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 평화통일과 화합을 기원하는 기도의 성지이다. 우리나라 전쟁사에 있어 서희(徐熙, 948~998) 선생은 고려 초의 문신이자 불세출의 외교·군사 전략가로 ‘서희의 담판’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서희 선생은 거란의 침입 때 적장 소손녕과의 담판으로 80만 거란 대군을 철수시켰을 뿐만 아니라, 압록강 유역의 강동 6주까지 고려 영토로 회복시킨 역사적 인물이다.

 

 # 종교화합 성지 주어사지

 산북면사무소를 조금 못 미쳐 오른쪽으로 2㎞쯤 들어가면 산북면 하품2리(현재 주어리)에 이르게 된다. 하품2리는 행정구역상의 이름이고 주민들은 주예라고 부르고 있다. 주예는 주어라는 말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주예 뒤편 약 3㎞ 지점의 산기슭에 사지가 있다. 이 사지와 주어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에 한 대사가 자기가 원하는 절터를 잡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으나 아무리 찾아봐도 마땅한 절터가 없어 애를 태우고 있었다.그러던 어느 날 지금의 금사면 강가의 어느 마을에 이르러 하룻밤을 보내게 됐는데 꿈에 한 도사가 나타나 "네가 원하는 절터를 잡으려면 내일 아침 한강에 나가 보아라. 그러면 큰 잉어 한 마리가 있을 것인즉 그 잉어를 따라가서 잉어가 머무는 곳에 절을 짓도록 하여라"하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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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는 다음 날 아침 도사가 말한 대로 강가에 나가 보니 과연 큰 잉어 한 마리가 대사를 보자 헤엄쳐가기 시작했다.

 따라가 보니 지금의 주어리까지 와 멈추었는데 이곳의 주변 산세를 둘러보니 과연 자기가 찾던 절터와 같은 지형이어서 전날 밤 도사의 말에 따라 이곳에 사찰을 세웠다. 그 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절은 날로 번창하고 발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주를 하고 돌아오니 항상 머무르고 있던 잉어가 보이지 않았다. 대사는 이것은 좋지 않은 징조라고 생각해 근심하고,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불도에 정진했다. 어느 날 법당 한가운데에 전에 없던 큰 기둥 하나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많은 빈대가 겹겹이 쌓여 기둥을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대사는 이 절을 떠나라는 부처님의 계시로 알고 절을 떠났다고 하며, 그 후 절은 폐쇄됐다 하는데 지금도 사지에 남아 있는 기왓장이나 구들장을 들치면 이때 죽은 빈대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이 동네 촌로들의 말에 따르면 이 절터에 비석이 한 개 서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고 하며 마을 앞에 곳집거리라고 부르는 자리에 주어사의 창조가 있었다고 한다.

 주어사지는 실상 천진암 성지와 함께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요 실학사상을 키운 한국 근대화의 온상이다. 주어사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은 1779년(정조 3) 권철신의 주도 아래 정약전, 권상학, 이총억 등이 참석해 한역(漢譯) 서학서(西學書)의 강학(講學)이 이뤄지는 등 우리나라 천주교 요람지로서 주목받는 곳이다.

 # 생사합주 동서융합의 옹청박물관

 박물관 측이 현대 순교자에 초점을 맞춘 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한 해라는 점이 먼저 고려됐다. 교황은 지난해 8월 16일 한국 천주교 사상 세 번째 시복식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집전한 바 있다. 대상이 된 124위의 복자는 모두 조선 시대 말 순교한 이들이었다. 그들이 복자가 되면서 이제 현대 순교자들의 시복에 힘을 모을 때가 됐다는 설명이다.

 2014년은 한국 최초의 해외 선교사였던 김선영 요셉(1898~1974) 신부의 순교 40주년이 되는 해다. 김 신부는 1930년 중국으로 파견돼 만주(滿洲)·하얼빈(哈爾濱)·옌볜(延邊) 등에서 복음을 전파했다. 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외국인 추방 명령을 받지만 이를 거부하다 미국 간첩 혐의를 쓰고 15년 옥살이를 했고 결국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선종했다.

 지난해 시복·시성 대상이 된 ‘현대 순교자’는 김 신부를 포함해 118위다. 2009년 주교회의가 실시한 ‘근·현대 신앙의 증인에 대한 시복 조사’에서 선정된 80인, 그리고 2007년 베네딕도회 소속으로 한국전쟁 전후 희생된 순교자 38위를 합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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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 측은 관내 정자와 동산 조성 외에도 2층짜리 신약관 건물 일부를 현대 순교자 기념관으로 꾸며 그들의 유품과 기록물을 전시하고 있다. 순교자를 기리는 동상과 조각 작품도 함께 설치했다. 옹기와 토기, 청자·백자 같은 전통문화 유산을 건물 안팎에 배치하면서 구약·신약 성서를 상징하는 나전칠화 작품을 천장과 기둥 곳곳에 붙여놨다.

 현재 성경 73경 나전칠화 작품과 도자기류 문화재 500여 점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모든 작품 제작은 김경자 한양대 명예교수와 무형문화재 손대현·김의용·강정조 선생이 맡았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박물관 설립 초기부터 주문했던 일이었다고 한다. 문화유산 등재추진위원회는 박물관뿐 아니라 박물관이 있는 여주시 산북면 전체를 등재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주변 해여림 식물원은 물론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였던 주어사까지 문화유산으로 등재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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