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기자는 지금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30㎡ 남짓의 시민아파트라는 곳에 살았다.
 총 5층짜리 이 아파트에는 한 층에 8가구가 살았고 지금과는 달리 한여름이면 모든 집이 현관문을 열어놓고 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돌이켜보면 그때 기자가 살았던 아파트는 항상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는 놀이터이자 배움터였던 것 같다.
 생계유지를 위해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 대신 옆집 아주머니가 매일 간식으로 라면을 끓여주셨고 건넛집에 살던 배수공 아저씨에게는 장기와 바둑을 배웠다.
 VCR 비디오가 있던 동네 형 집은 항상 주성치가 나오는 홍콩 코믹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곳이자 부모님 몰래 빨간 비디오를 볼 수 있었던 유일한 공간이기도 했다.
 지금은 층간 소음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지만 아파트 옥상은 동네 형, 동생들이 한데 모여 축구와 농구, 야구 등 모든 스포츠를 즐길 수 있었던 최고의 구장이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취임 이후 마을교육공동체라는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을 내놨다.
 기자의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겠지만 마을 전체가 아이들의 배움터가 된다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하는 마을교육공동체의 비전과 추진 사항들을 짚어봤다.<편집자 주>

 

# 마을교육공동체의 개념정립과 비전

 경기도교육청은 이재정 교육감 취임 이후 꾸준히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마을교육공동체라고 하면 막연하게만 느껴진다. 하나의 건물처럼 뚜렷한 형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데다 아직 초기 단계라 특별한 사례를 보여주기도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확실한 개념 정리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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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교육공동체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마을이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것’이다.

 마을교육공동체는 한 지역의 아이들을 키우는 역할과 책임이 이제는 더는 학교에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개념에서부터 출발한다.

 지역사회 모든 교육주체가 공동의 권한과 책임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의 모든 주민이 아이들을 위한 교사가 되고, 친구가 되며, 관찰자가 돼서 공동의 권한과 책임을 나눠 갖는 것을 의미한다.

 선제적으로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지역의 공공기관, 사회단체, 기업, 작은 공동체 등이 교육의 방관자가 아니라 책임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사회가 가지고 있는 교육자원과 인프라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진정한 교육공동체는 아이들이 학교뿐만 아니라 마을의 자연, 사회, 삶 속에서 살아있는 배움을 실천할 수 있는 교육적인 기회와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마을교육공동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아이들을 마을의 주인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마을교육공동체를 통해 학습역량과 정의적인 발달을 도모하고, 학습과 성장의 결과가 다시 지역사회로 환원되는 선순환적인 구조가 가장 이상적이자 바람직한 교육공동체의 모습이다.

 이때 학습의 결과가 지역사회로 환원된다는 의미는 그 지역사회에서 교육받은 아이들이 다시 그 지역사회의 주민으로 성장해 지역 발전을 위한 주인의식을 발휘하는 시민이나 주민이 되는 것을 말한다.

 

 # 마을교육공동체 어디까지 왔나

 마을교육공동체가 이재정 교육감 취임 후 처음 시도된 사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그는 마을교육공동체의 개념 정의와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을 뿐, 그동안 마을교육공동체는 꾸준히 진행돼 왔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경기도 교육의 핵심축을 담당하고 있는 혁신학교다.

 성공적인 혁신학교를 자세히 살펴보면, 마을을 중심으로 하는 수업 디자인은 물론 마을을 교육과정에 포함시켜 학교 비전과 철학을 공유하며 설계하는 교육과정 재구성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 주변 마을에서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하며 학부모들은 학습모임이나 동아리를 꾸려 마을 카페나 학습공간에서 활동을 한다.

 지역사회의 마을 전문가들은 함께 하는 방과 후 학교를 운영하기도 한다. 학교 매점 등을 중심으로 협동조합이 구축되기도 한다. 혁신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마을교육공동체의 씨앗이 곳곳에 뿌려지고 있는 것이다.

 마을교육공동체는 우리 주변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양평의 세월초등학교는 교육공동체가 ‘동’이나 ‘리’와 같이 비교적 작은 규모로 운영되는 사례로 프로그램이 주로 근접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 주민, 학교 등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보다 좀 더 확대된 형태로는 한 지역의 학교들이 서로 유대를 이어가는 형태다. 양평군 서종면의 수입초, 정배초, 서종초, 서종중학교는 하나의 교육공동체를 형성하며,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고양시 덕양구에서는 백양초와 덕양중이 학교급 간의 연계성을 갖고 마을교육공동체를 실현하고 있다.

 현재 가장 큰 마을교육공동체의 형태는 교육지원청이나 지자체와 연계된 형태다.

 시흥시의 경우도 공교육지원센터에서 시 전체에 대한 교육공동체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의정부여중의 경우 교육복지대상학교로 지정되면서 학생들 스스로 지역을 조사하고 배움터를 발굴하는 통합교육과정 운영이 가능해져 학생들이 마을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과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마을교육공동체는 관심 있는 몇 개의 지자체와 교육청, 학교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

 

 # 발전 과제와 해법은

 마을교육공동체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추상적인 대규모 기획보다는 학교, 지역사회, 학생, 교사, 주민, 학부모 등이 교육적 환경에서 필요성을 느끼는 소규모 단위에서부터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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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함께 지역사회의 교육력 성장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

 지역사회는 교육 시설과 인적 자원, 문화와 전통, 공공기관 및 사적 기관 등을 활용해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 및 시민 등 모든 학습자의 학습역량을 강화시키고, 배움이 단지 학교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학교 밖의 지역사회 어디에서나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공동체적 접근이 이뤄졌을 때 마을교육공동체도 제 모습을 갖출 수 있다.

 단기적 성과보다는 문화적 변화를 이끌어야 하며 90% 이상의 교육이 아이들을 위한 행복교육으로 진행돼야 한다.

 핵심 주체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천이든 정책이든 사람이 중요하다.

 마을교육공동체 연수는 기존과도 확연히 다른 면모를 보여야 한다.

 ‘모·떠·꿈 운동(모이자, 떠들자, 꿈꾸자)’이 가장 필요한 곳이 바로 마을교육공동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마을교육공동체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역의 아이들을 그 지역의 민주시민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며 "마을교육공동체가 경기혁신교육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새로운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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