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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찬근 인천대 교수
 어떤 미국인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명문 하버드대는 매년 천오백여 명의 신입생을 받는데, 대학이 이들에게 강조하는 인재상은 ‘공부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만드는 사람(those who reshape the world)’ 이라고 한다.

 "여러분은 이 시대에 가장 뛰어난 인재이다. 때문에 세상의 가장 어려운 문제가 여러분에게 맡겨져 있다. 여러분의 지력과 투지로 해법을 찾아야 하고, 설사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최선의 답이다" 라는 말로 하버드대는 갓 들어온 신입생들에게 삶의 미션을 제시한다. 뭔가 열심히 배워 쫓아가면 된다는 후발 패러다임에 지배받아온 필자의 세대에겐 가히 충격적인 주문이다. 해도(海圖)가 없어도 스스로 항로를 찾아 뉴 프론티어를 개척해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에 사뭇 숙연해진다.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따라가기 패러다임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 등 신생 추격자의 출현으로 인해 후발의 이점을 상실한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한국은 미답의 프론티어를 모색해야 하고, 이를 위한 실험기지를 구축해야 한다.

 필자는 그 유력한 후보지가 갯벌을 메워 만든 송도국제도시라고 생각한다. 산업화 시대를 견인한 것이 경부고속도로로 이어진 경부축이었다면, 지식서비스 시대를 선도할 곳은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경인축이다. 그런 가운데 서해바다에 면하여 혹처럼 돌출한 송도국제도시에서 글로벌 지식클러스터가 만들어지고 있다.

 송도는 아직 미완성이지만 이미 손색없는 하드웨어의 틀을 갖추었다. 미국적 감각으로 조성된 신도시는 깔끔하고 쾌적하며, 스카이라인이 아름답다. 덕분에 세계 명문대학들이 들어와 글로벌 대학촌을 조성하고 있고, 녹색기후기금(GCF)을 위시한 국제기구들이 다수 입주하여 국제 커뮤니티를 형성해 가고 있으며, 바이오, IT, GT 분야의 다국적기업들이 속속 둥지를 틀고 있다. 남은 과제는 리콴유의 싱가폴이 그러했듯이 시대의 맥점을 짚어내는 촌철살인의 비전과 이를 뒷받침하는 창의적인 제도의 정비이다.

 지구상에는 약 30여 개의 지식서비스 클러스터가 존재하는데, 그 어디도 절대적 우위요인으로 무장한 곳은 없다. 누군가의 예지로 선견(先見)이 이뤄지고, 조직력으로 화답하여 선수(先手)를 잡고, 반보의 앞서기를 거듭하여 선제(先制)의 지위를 얻은 것이다. 룩셈부르크를 예로 들어보자. 인구 50만 명의 룩셈부르크는 현재 인당 소득 9만 달러이다.

 국제금융을 매개로 법무, 세무, 회계, 사무수탁, 행사기획 등 다양한 지식서비스산업이 아웃소싱 클러스터를 형성하여 일궈낸 성과이다.

 60년대 초 한 은행원과 관료의 의기투합으로 최초로 발행된 유로채권을 상대로 역외 상장기지를 제공한 것이 그 스토리의 시작이다. 이것이 이후 프라이빗 뱅킹기지로 또 펀드창설시장으로 확장을 거듭했는데, 그 배후에는 매 3개월 간격으로 업계와의 대화를 통해 법과 제도를 다듬고 정비함으로써 친비지니스를 실천한 정부와 의회가 있었다.

 송도는 녹색기후기금의 진출로 선견-선수-선제의 기회를 잡았다. 기후변화가 인재(人災)인가, 천재(天災)인가 라는 과학자들의 공방에도 불구하고, 또 미국의 세일가스 개발로 에너지시장의 지각변동이 예고됨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는 인류에게 주어진 숙제로서 향후 막대한 투자를 견인할 것이다.

사람들이 기후변화를 뚜렷하게 체감하면서 우려가 증폭될 것이고, 이것이 결국 정치를 움직여 눈덩이처럼 투자를 키울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제 송도는 국제적으로 기후투자를 논의하고, 그 타당성을 점검하고, 사업추진의 구조를 만들고, 이를 법인체로 창설하는 일련의 제도적 인프라, 즉 소프트웨어를 제공해야 한다. 이렇게 기후를 화두로 세상을 새로 만드는 일에 누군가 나서서 총대를 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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