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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프랑스적인 영화감독으로 칭송 받는 로베르 브레송은 영화의 본성인 이미지와 사운드를 철두철미 하게 탐구했던 감독이다. 그는 영화의 연극적 재생과 재생산을 거부하고, 창조를 위한 영상표현을 긍정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영화 속에서 "사물의 모든 면을 보여주지 말고, 결정되지 않은 여백을 남겨 두라"는 자신의 신념을 창조적으로 실천하고자 했다.

그는 특히 배우의 몰입을 유도하는 극예술 표현방식을 거부하며 한계를 짓는 행위에 반기를 들었다. 브레송 감독은 의도적이며, 과장된 모방을 선보이거나 분석을 통해 연기하는 모든 행동을 반대했다.

 그에게 있어 배우란 존재하는 그대로의 모습과 행동이 중요할 뿐, 감정이입을 통해 자신이 아닌 무언가를 표현하는 연기를 주문하지 않았다.

 브레송 감독은 배우들이 작품 속에 존재할 뿐, 연기하지 않는 대상으로 남아있길 바랬다.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 감독의 철학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 ‘소매치기’를 통해 브레송 감독의 영상미학을 느껴보자.

 소매치기로 살아가는 미셀은 목적 없이 돈을 훔친다. 그는 훔친 돈에 대한 물욕도 없고 그 동기 또한 말하지 않는다.

그는 매번 현관문을 한껏 열어둔 채 외출하는가 하면, 자신을 의심하는 경찰 앞에서도 ‘초인적인 천재 소매치기는 사회 정상화를 위해 필요한 존재’라는 신념을 내뱉기도 한다.

 초인적인 소매치기가 되고자 하는 그의 희망사항에는 어떠한 자기위안적인 핑계거리도 동원되지 않았다.

 그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반발이나 개인적 원한 및 억울함으로 도둑질을 택하지 않았다. 그저 초월적 초인의 필요성으로 소매치기 행위와 그 기술의 숙련도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자신만의 대업을 위해 모든 관계성을 유보한 채 고독을 끌어안는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가는 여인 잔느에게도 감정을 소거한 채 담담한 거리를 유지하고자 했다. 그리 오래지 않아 그의 소매치기 기술은 일취월장 했고, 미셸의 손기술은 우아함의 극치를 선보이며 예술적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자신을 향해 조여오는 수사망을 피해 그는 해외로 도피하였으나, 이후 2년 후 다시 돌아온 파리에서 또 다시 소매치기를 하려다 경찰에 붙잡힌다. 결국 실형을 살게 된 미셸과 그를 찾아 온 잔느.

 차가운 철창 사이로 얼굴을 맞댄 미셸은 잔느에게 비로소 고백한다. "나 그대에게 이르기 위해 얼마나 기이한 길을 걸어 왔던가!"

 1959년에 발표된 로베르 브레송의 여섯 번째 장편영화 ‘소매치기’는, 한 남성의 인생행로를 통해 인간의 의지와 운명 그리고 구원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이다.

 브레송 감독은 관습적인 연기 대신 신체의 일부만을 포착한 영상의 몽타주적 배열을 통해 연기가 제한할 수 있는 감정표현을 더욱 폭넓게 확장시키고 있다.

 이미지 전달의 창조적 완성은 결국 감독이 전하는 구원의 메시지 또한 강조하고 있다. 언제나 이곳이 아닌 다른 세상을 응시하며 타인의 지갑을 만지던 미셸의 손이 자신을 위해 뜨거운 눈물을 흘려주는 단 한 사람 잔느를 어루만지게 되면서 그의 삶도 위안을 얻게 된다.

 자포자기한 채 세상을 외롭게 살아가던 미셸은 고독의 끝에서 희망의 작은 빛과 마주하게 된다. 나 그대를 만나기 위해 멀고 먼 기이한 길을 걸어왔지만, 당신을 만나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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