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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재웅 변호사
독일의 철학자 칼 마르크스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을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모순"으로 보았다.

 그는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설명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역사적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노동자가 주축이 된 사회주의 혁명의 당위성을 역설한 바 있다.

 그러나 본래적 의미의 사회주의 국가가 더 이상 존재 하지 않는 지금 마르크스의 분석과 주장은 상당부분 타당성을 잃었고 그를 교조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도 없다.

비록 노동문제가 모든 모순과 갈등을 포괄하는 "근본모순"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현대사회 가장 격렬하고 첨예한 갈등을 잉태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서고 최류탄이 터지는 풍경은 1990년대까지 흔한 풍경이었고, 2000년대부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가 사회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노동자와 기업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대립할 수밖에 없으며 생존권의 문제와 직관되어 쉽게 타협을 이루기도 어렵다.

 또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월급을 주거나 월급을 받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다른 갈등 보다 이해관계 엮인 사람이 많고 관심도 역시 높다. 노동문제가 우리 사회 가장 "뜨거운 감자"인 것은 분명하다.

최근 여당은 임금피크제와 해고 요건 완화를 주요내용을 하는 노동개혁을 4대 개혁 중 하나로 제시하면서 당대표가 나서 연일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야당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고 하면서 반발하고 있으며, 직접 이해당자사인 노동계는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강행할 경우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여당 대표는 "청년들이 고용 절벽 앞에서 좌절하고 정규·비정규직 간 차이가 커서 사회적 갈등이 치유가 힘들 정도로 악화하고 있다"고 하면서 노동개혁은 "격차해소와 청·장년의 상생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될 그런 국가 과제"라고 비장하게 강조하기도 했다.

이미 심각한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라니 그말 그대로라면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명분이 아니라 디테일이다.

사실 임금피크제와 해고요건 완화는 그 자체만으로는 낮은 임금과 더 쉬운 해고를 의미하는 것에 가깝다.

 그러므로 임금피크제와 더불어 시행되면서 청년고용을 확충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 해고 요건의 완화는 다른 말로 노동시장 유연화를 의미하는데, 사회적 안전망이 마련되지 않는 상태에서 해고 요건을 지나치게 완화할 경우 서민경제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 수준 또는 이에 준하는 사회적 안전망 확충을 선행하여 논의하여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해고의 용이함이 어떻게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을 완화하는지도 설명해 주어야 할 것이다.

청년실업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를 빌미로 고용조건이 전반적으로 하향평준화 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당이 노동개혁의 진정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디테일하고 치밀한 입법안을 가지고 야당과 노동계를 설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격차해소와 청·장년의 상생’이라는 언급이 대외적인 명분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야당 역시 즉자적인 대응보다는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토론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절차가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당은 최근 노동시장선진화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이인제 의원을 위원장으로 선임하였는데, 그 절차가 대단히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외부에서는 이런 속도전이 혹시나 밀어 붙이기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노동문제는 "뜨거운 감자"이다. 노동문제를 올바르게 처리하지 않을 경우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감내해야 한다.

 우리는 97년도 노동법 날치기 사건 이후 극심한 사회혼란을 겪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여당은 야당은 물론 민주노총, 한국노총과도 적극적으로 대화하여 사회적 대합의를 이끌어 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과정에서 치열한 논쟁과 갈등이 이후 부작용을 최소화 하는 지름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동문제는 일상적인 국정 현안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우리 모두의 미래와 삶의 질을 결정하는 문제이다. 정치권은 일방의 의견만을 대변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진정으로 국가의 미래를 위한 대안이 무엇인지 고민하여 국민에게 제시할 의무가 있다. 부디 사회전체의 지혜와 인내를 모아 슬기로운 결론이 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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