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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하기 칼럼니스트/작가
철도는 1825년에 영국의 스톡턴(Stockton)과 달링턴(Darlington) 사이에 부설된 것이 세계 최초이다. 증기기차의 아버지인 스티븐슨이 말과의 속도 대결을 벌여 승리한 뒤 철도는 산업화의 동력으로 인식되어 급속도로 세계 각국에 보급되었다.

 1830년 미국, 1832년 프랑스, 1872년에는 일본에서 동경과 요코하마(橫濱)간에 철도가 개설되었다. 우리나라는 1876년 개항 이후 철도 부설의 이권(利權)을 둘러싼 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 등 열강의 각축 끝에 일본이 독점권을 차지하였으며, 1899년 노량진과 제물포 간의 경인선(京仁線) 33.2㎞를 우리나라 최초 열차인 ‘모갈 1호’가 목재 객차 3량을 달고 시속 20~30㎞로 달린 것이 최초의 철도 운행 기록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들은 비싼 기찻삯이나 배일감정 등으로 기차를 그다지 이용하지 않았으며, 철도는 식민지 수탈의 효율적인 수단으로 작용했다.

해방 후 우리나라 서민들이 애호했던 비둘기호, 통일호, 무궁화호 기차는 한 때는 모두 특급열차였다. 비둘기호라는 이름의 열차는 1967년 8월 13일에 그때까지 사용하던 ‘맹호호’(월남전 참전부대인 ‘맹호부대’에서 따온 이름)라는 서울-부산 간 특급열차를 전쟁 대신 평화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비둘기호’로 변경한 데서 시작되었다.

 그러다 1984년 열차 이름을 개정하면서 새마을호·무궁화호·통일호·비둘기호로 바뀐 뒤, 2000년 11월 마지막으로 운행될 때까지 이 명칭을 유지하였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느린 비둘기호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평균시속 30km로 달려 12시간이나 걸렸으며, 노선에 위치한 모든 역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정차했다. 비둘기호는 느린 만큼 요금이 저렴했다. 급행열차의 1/5밖에 되지 않았던 요금 덕분에 학생, 상인, 노동자 등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열차를 이용했다. 그때는 ‘입석표’가 있었는데, 좌석표가 아닌 일종의 ‘열차 이용권’이었다. 앉아서 가도 허리가 끊어질 정도의 시간인 12시간을 서서 가거나 바닥에 주저앉아서 갔지만 그곳에는 낭만과 애환이 있었기에 그다지 피곤을 몰랐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동안 옆자리 사람의 언어가 수시로 바뀌고 서로 팔도의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같은 경상도라도 부산 경남은 말이 빠르지만 경북인 김천 구미로 가면 좀 느린 ‘하니껴’라는 사투리의 사람과 만나게 되고, 충청도인 대전 조치원으로 올라가면 ‘했어유’라는 느긋한 충청도 사투리의 사람과 만난다. 경기도를 지나 영등포에 들어가면 라디오에서나 들었던 매끄러운 서울말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긴 여행의 종착지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실감한다.

 열차를 타는 또 하나의 재미는 지방마다 특색 있는 먹거리다. 부산역에서 어묵을 먹고 삼랑진에만 가도 벌써 김밥과 우동이 올라오고, "심심풀이 땅콩과 오징어 있어요"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어야 한다.

 역마다 특색 있는 도시락이 올라오고, 경주 황남빵, 안동 간고등어, 천안 호두과자, 안흥 찐빵 등 지방 명물이 수시로 올라온다. 열차 한편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술판, 화투판이 벌어지기도 하고, 즉석 통기타, 대금 연주회가 열리기도 했다.

 창문은 힘을 세게 주고 위아래로 여닫아야 했으며, 가끔 달리다보면 저절로 ‘쾅’하고 닫혔기도 했다. 우리 옛 서민들의 애환이 녹아있어 ‘낭만열차’로 불리는 비둘기호는 이용객이 줄고 단거리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2000년에 폐지되어 통일호가 비둘기호를 대체하게 됨으로써 이제는 철도 박물관에서나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통일호도 사라지고 새마을은커녕 가장 저렴한 무궁화호에서조차도 그런 낭만은 사라진 지 오래다. 새로 등장한 KTX는 속력 300km/h, 부산-서울 2시간 30분, 한국철도 발전과정의 최정점에 다다른 열차이다.

 KTX는 속도와 시간뿐만이 아니라 쾌적한 서비스에 한국인들에게 가장 편리한 교통수단이 되었다. 눈 감고 잠시 졸고 있으면 서울에서 부산에 도착한다.

 하지만 옆자리 사람과 말 한 마디 없이 레일처럼 평행선을 유지하며 먼 길을 가는 것을 과연 편리하다 할 수 있을지, 옛날 비둘기호의 낭만이 새삼 그리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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