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사랑, 한 번의 사랑, 혹은 첫사랑.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이 단어는 간혹 후자의 추억으로 이끌어 가곤 한다. 고3시절, 같은 학교 고2 후배와의 만남. 누구나 첫사랑이 그렇듯(혹자들은 남자가 유독 그러하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정확한 검증은 없다), 이러저러한 에피소드들이 많지만 가장 뚜렷하고 억울한 사건(?)이 있다.

 몇 년 혹은 십여 년 전, 우연히 보던 TV속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한 남자가 여자의 집 앞에서 손 글씨로 고백을 하던 장면이 나왔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알고 보니 2000년대 초반 개봉됐던 이후 꽤나 화제가 됐던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 장면은 1990년대 중반, 영화가 만들어지기 훨씬 전, 첫사랑이었던 친구에게 직접 몸소 실천했던 장면이었다. 휴대폰은커녕, 호출기도 없던 당시 집전화도 금기시됐던 여자 친구와의 소통은 아파트 2층에 살던 그 친구의 방 창문을 통할 수밖에 없었다.

 창문을 통해 방에 불이 켜진 것이 확인되면 작은 돌을 찾아 창문에 던졌고, 두어 번 ‘딱딱’ 소리가 나면 그 친구는 자연스레 창문을 열었다. 물리적인 거리 때문에 일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했고, 이 때 생각해 낸 것이 스케치북에 하고 싶은 말을 담아 보여주는 것이었다.

 스케치북을 넘길 때마다 그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좌우로 흔들며 소통을 이어갔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행위’가 영화에서처럼 낭만적이라 느끼지 못했다.

 보고픈 마음에 치열하게 고민한 필연적인 몸부림이었고, 그저 창문을 통해 내민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물론(?) 첫사랑의 기억은 그로부터 수년 뒤 상처로 마무리됐지만….

 이 와는 별개로, 요즘 주변 친구들 중에 일애를 꿈꾸거나 실천하는 친구들이 있다. 지금 그들에게 일애는 첫사랑이 아니다. 하나의 사랑, 혹은 한 번의 사랑임을 알고 있다.

어찌 보면 끝이 보이는 사랑이기 때문에, 끝 이후에 조금은 아플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란 단어를 쓰면서도 사실 사랑이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간은 행복한 일이고, 사랑할 사람이 있다면 사랑하는 게 맞다. 그래서 난 친구들을 응원하고 싶다. 그들의 사랑은 분명,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만을 향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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