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잊혀져 가고 감성이 사라져 가는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를 두 눈 부릅뜨고 본, 그리고 저의 가슴속에 새겨진 인천의 시간들을 표현하고 싶었죠.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시를 보는 삶’을 통해 정서적 치유를 받은 시간들은 학생들이나 어른들이나 꼭 필요합니다."

문학이 인성교육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인천 송도고등학교 국어교사인 박일(57)시인이 최근 「바람의 심장」이란 시집을 펴냈다.

박일 시인은 "최근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 창작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예상과 달리 좋은 반응이 나왔다"며 "문학(국어)을 수학능력시험의 학습 대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시를 통해 감성을 느끼고 마음으로 깨우쳐 가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게 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1991년 첫 시집을 내고 은퇴를 몇 년 앞둔 이제서야 두 번 째 시집을 펴냈다"며 "24년간 쓴 시작 중 72편을 골랐다"고 말했다.

사실 수업과 야간 자율학습 등 교사라는 본분(?) 때문에 1년에 고작 5∼7편만 쓸 만큼 그의 시작(詩作)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인하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스승인 김재홍 교수의 ‘고민하며 또 고민하며 시를 써라’라는 가르침 때문이었다. 시 세계를 물려준 또 한 명의 스승도 잊을 수 없다. 바로 같은 학교 교수였던 조병화 시인이다. 결혼식 주례를 봐준 조병화 시인이 그에게 남긴 말도 마음속에 새겨 있다.

박 시인은 "1981년 겨울 어느 날 조병화 교수께서 손수 적어주신 ‘좋은 시는 열심히 사는 곳에서 샘 틉니다’라는 글귀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며 "공백이 있었지만 두 스승께서 말씀대로 뒤늦게나마 시집을 발간하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눌러앉는 인천에 대한 모습들을 정성껏 시어로 표현했으니 꼭 기사와 함께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시인은 시로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그의 소신대로 그의 시어를 옮겨본다.

# 화수포구에서

자네, 그림자를 남기고 싶거든
화수포구 골 깊은 갯골로 오게
갈매기들이 하얗게 몸을 털다가
안개로 일어서는
갯골로 오게
사람들의 바다가 그림자를 만드는 그곳에는
이마에 소금기가 앉은 어부들과
아낙들이 돌부처가 되어
삶을 깁고 있네
자네, 화수포구 골 깊은 갯골의
갯골 사이에서
손을 흔들어 보게
살아 있는 자, 그대의 목숨이 목숨인가
숨을 쉬는 자, 그대의 밤이 밤인가
뜨거운 심장은 보이지 않네
보이지 않는 손들이 손을
흔드는 세상이기에
자네, 빨리 갯골로 와 보게
햇살의 주검이 바다로 가라앉는
눈물을 보게


김경일 기자 ki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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