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가치를 향한 끊임없는 외길 인생이 아름다운 아집이라고 생각되는지, 허명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진정한 인간이 되었는지, 영혼이 있는 작품으로 승부하는 예술가인지…. 언제나 치열하게 물음표를 던져야 해. 그래야 진정한 예술인이야."

‘이런 질문을 마음속에 달고 다니다 보니 자랑할 게 없다’, ‘나보다는 이제 막 예술의 날갯짓을 시작한 신예들을 대중에게 알려달라’ 등등의 핑계로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한 인천 대표 예술인이 있다. 바로 인천예총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김학균(70)시인.

1968년 시인으로 등단해 인천문인협회 회장을 두 번이나 역임하면서 많은 활동을 펼쳐 인천 예술계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지역에 대한 애정이 어린 충고(?)는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인천의 정체성이 뭐냐고요. 나를 나답게 만들고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정체성이잖아. 그런 의미에서 근대 역사를 통해 각지의 사람들이 항구도시인 인천으로 유입된 것에 주목해야 하지. 결국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어울리면서 잘 사는 곳’을 우리 인천의 색이자 가치로 재정립하는 것이 시급해."

‘인천의 가치 재창조·재정립’이라는 테마를 이렇게 정하고 보면 지역 문화계에서 생각해봐야 할 점이 여럿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우선 예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지역을 대표하는 작품이 곧 전국적인 지명도를 획득할 수 있고 세계적으로도 뻗을 수 있는 것은 자명한 이치잖아. 그런 의미에서 예를 들면 ‘인천 항구 연극제’를 ‘인천 함세덕 연극제’로 이름을 바꿔 지역성을 부각하거나, 가곡 ‘그리운 금강산’의 작사자 한상억·작곡가 최영섭 등 꼭 기억해야 할 지역 대표 예술인에 조명 작업(기록 관리와 구술채록)이 꼭 필요하다고 볼 수 있지."

격의 없이 진행된 대담은 인천 예술의 실상에 관한 주제로 자연스럽게 옮겨졌다.

"책의 수도 행사와 관련해 9월에 대한민국 독서대전이 인천에서 열려요. 유명 작가의 북 콘서트 등이 다채롭게 진행되는 거 좋죠. 하지만 인천의 문학인들도 소개하면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한 방향으로 기획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까움이 그지없어."

후배들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열악한 예술 현실을 두고 한 말이다.

"지금은 국민 화가라 불리는 박수근이 궁핍해 껌 종이에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먹는 것조차 고민하는 시대는 지났지만 여전히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시대인 건 분명해. 최근 생활고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한 무명 연극인이 전에 인천에서도 연극 활동하면서 생업으로 막노동까지 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금도 여전해. 인천(수봉)문화회관 공연 포스터를 길거리에 붙이는 일이 있으면 부업을 원하는 연극배우들에게 꼭 맡길 정도이니, 인천의 문화 복지가 어느 정도인지 대략 짐작하겠지. 인천의 문화가치 재정립 등의 이슈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이거야."

인터뷰가 한 시간을 넘어가자 김 시인은 "어쭙잖은 말 많이 했으니 이젠 그만하고 ‘대포 대담’이나 가자"고 기자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어 몇 통의 전화로 바로 그를 따르는 작가·화가·한문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후배들이 몰려왔다. 그렇게 시작된 ‘대포 대담’은 예술과 지역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우며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김경일 기자 ki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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