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년들을 삼포세대라 했던가! 극심한 취업난과 불안정한 고용,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과 물가상승에 따른 생계걱정으로 30, 40년 뒤 노후가 아닌 당장 눈앞에 닥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20, 30대를 일컫는 말이다.

 이처럼 요즘 추세가 연애와 결혼을 미루고 있기 때문일까? 가상 연애, 결혼을 소재로 한 아이템은 마치 방송 필수 콘텐츠처럼 자리잡은 지도 오래다. 사실 가상 연애 프로그램은 개인의 직간접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공감하며 볼만하기도 하지만, 가상 결혼은 그 문제가 다르다.

 아무리 가상 결혼이더라도 결혼은 결혼일 터, 가짜로 어줍잖은 흉내만 내다간 여론의 뭇매를 맞기 십상이다.

 그런 한계가 빠르게 노출된 탓인지, 요즘엔 가상 결혼 및 가상 부부 연예인에 대한 관심도 예전 같지는 않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영화는 가공의 이야기 임을 망각할 만큼 부부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30여 년이 넘는 감독 경력 중 대다수의 작품에서 가족과 부부의 이야기를

 탐구한 따뜻한 시선의 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1952년 작 ‘오차즈케(녹차에 밥을 말아 먹는 요리)의 맛’을 만나보자.

 타에코는 하녀를 부리며 사는 부유한 집의 사모님이다. 잘나가는 기업의 부장으로 일하며 능력을 인정받은 남편과의 인연은 맞선을 통해 맺어졌다.

 어쩌다 보니 무난하겠다 싶어 결혼은 했지만, 남편과는 이만저만 취향 차이가 있는 게 아니었다. 시골출신으로 다소 촌스럽고 고지식하며 눈치는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둔감하기 이를 데 없는 이 남자는 타에코의 도시적 스타일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그나마 이 사내의 장점이라면 모나지 않은 성격이랄까! 그러나 그마저도 타에코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렇게 남편이 지루하다 싶을 때, 그녀는 1박2일 온천 나들이로 기분전환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혼담으로 고민하던 조카와 이야기를 나누던 고모 타에코는 모순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매번 조카 앞에서 재미없고 멋없는 남편과 밍밍한 결혼 생활을 흉봤던 자신이, 되려 조카에게 결혼하면 행복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조카는 고모처럼 살고 싶지 않다며 비난의 말들을 쏟아내고 돌아가 버린다. 그 날 밤, 타에코는 호로록 소리를 내며 오차즈케를 맛있게 먹던 애꿎은 남편에게 분풀이를 해댄다. 화가 난 아내에게 자신이 촌스러워서 미안하다면서도 남편은, ‘난 일등석 보다는 삼등칸이 편하고, 고급 담배보다는 싸구려 담배가 더 입에 맞아. 친밀하고 원초적인 것, 스스럼 없이 편한 게 더 좋아’라며 우직하게 자기 소신을 밝힌다.

 이에 더 분이 난 아내는 그럼 각자 편한 대로 살자며 4박5일 여행을 떠난다. 철부지 같았던 가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타에코는 남편이 없는 빈 집에서 하릴없이 빈둥거리다 남편의 행동을 따라 해 본다. 그리고 작은 심경의 변화가 일어 난다.

그 날 밤, 타에코는 남편을 위해 오차즈케를 손수 마련해 본다. 찬 밥에 따뜻한 녹차를 국물 삼아 오이지와 같이 먹는 소박한 그 밥상에서 타에코는 왈칵 눈물을 쏟아내며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일본의 오차즈케는 우리 음식 중 누룽지나 물에 만 밥과 비슷하다. 담백한 밥의 맛에 물을 섞어 목 넘김이 부드럽고, 자칫 밍밍할 수 있는 밥맛을 새콤한 짠지로 잡아주는 이 음식은 요리라고 이름 붙이기엔 소박하지만 입맛이 없거나 허기 질 때, 그 어떤 산해진미로는 느껴볼 수 없는 포근함이 깃든 맛이라 하겠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이처럼 소원해진 부부관계를 오차즈케라는 평범한 맛을 통해 풀어가고 있다. ‘부부란 오차즈케의 맛 같은 거’라는 남편의 마지막 대사가 자꾸만 입안에 맴도는 이 작품은 오즈 야스지로 감독 따뜻한 시선과 특유의 낭만이 더해져 더욱 기품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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