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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장원(인천재능대학교 평생교육원장)
예상했던 대로 일본수상 아베의 전후 70년 담화는 어정쩡한 내용으로 일관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국이 아베 담화를 비판하고 있지만, 달라질 것은 없다. 아베가 이처럼 주변국 국민의 정서를 무시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일본사회의 우경화가 있다.

 이번 담화를 앞두고 마이니치신문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일본국민의 57%는 ‘일본이 피해국에 사죄와 피해보상을 충분히 했다’고 답했다. 이는 과거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으로 갈수록 심화되는 일본의 우경화 현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수치이다.

 일본의 우경화는 지금부터 10년 전 전후 60주년을 기념해 만든 ‘전함 야마토 최후의 전쟁’이나 2013년에 개봉한 ‘영원의 제로’와 같은 영화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가미카제를 미화한 ‘영원의 제로’는 8주 연속 1위의 자리를 지키며 2014년 일본영화 흥행수입 1위를 기록했다. 이 영화를 관람한 아베는 "조종사가 전사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목이 메일만큼 감동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하쿠타 나오키는 난징대학살을 부정하고, 평화헌법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본 문화계의 대표적 우익인사로 공영방송 NHK의 경영위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중산층 삶의 모습을 잘 묘사한 것으로 알려진 2014년 개봉영화 ‘작은집’에서는 다른 나라의 침략으로 이룬 도쿄의 번영과 이룰 누리는 시민의 뒤틀린 애국심을 볼 수 있다. 중산층 중년여성과 남편의 부하직원인 청년과의 불륜이 소재이다.

두 사람 사이의 비밀스런 행각을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가정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 영화는 제1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초청작이기도 하다. 완구회사 임원으로 근무하는 작은 집의 남자주인은 일본의 도쿄올림픽 유치와 난징함락 소식을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미스꼬시 백화점에서는 난징함락기념 바겐세일이 열리고, 작은 집에 놀러온 완구회사 사장은 중국점령이후 중국에서의 사업 확장을 꿈꾸며 즐거워한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미국보다 모든 면에서 열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영화는 서양에 대한 열등감과 아시아에서는 최고라는 우월성이 복잡하게 뒤엉킨 당시 일본인의 의식구조를 곳곳에서 드러낸다.

 일본은 주변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함도를 유네스코 잠정목록에 등재시키더니, 등재이후에는 좀스런 논리로 강제징용이란 표현을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아시아 최초로 근대화를 이룩한 일본의 상징인 군함도가 중요할 뿐 주변국의 희생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확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와 같은 일본사회의 우경화 경향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데에는 20년 이상 계속된 일본경제의 장기침체와 2011년에 발생한 대지진 등을 경험하면서 생긴 일본인의 무력함이 저변에 깔려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서 일본의 우경화는 좌우익을 가르는 정치적 관점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현재 일본에서 벌어지는 우경화 현상은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아래 영화를 누렸던 과거로의 회귀를 갈구하는 의식구조로 보는 것이 옳다.

 갈수록 깊어지는 일본의 우경화 현상에도 불구하고 이를 걱정하는 일본인도 상당히 많다. 앞서 언급한 여론조사에서 일본국민의 31%는 여전히 ‘일본의 2차 대전에 대한 사과가 미흡하다’고 응답했다.

 더욱 희망적인 사실은 ‘전쟁은 잘못된 것이며, 일본의 평화헌법이 평화유지에 공헌했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다고 인식하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 12일에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해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다.

 죽어가는 일본조종사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아베 정권으로부터 진심어린 사과를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외교적 수사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아베와 일본우익을 압박해 받아내는 사과는 위선에 불과하다. 양심적 일본인들과 호흡을 같이하며 성숙한 자세로 극일의 모습을 보이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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