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운이 좋은 모양이다. 전봇대 근처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박스를 6개나 발견했다. 부지런히 손수레를 끌고 전봇대로 향한 신명자(78·가명)할머니는 천천히 박스를 접어 담았다.

다리가 아파 잠시 앉아서 쉬다가도,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들 생각에 다시 일어난다. 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아들과 단 둘이 살아가고 있는 신 할머니는 남에게 손 벌리지 않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

신 할머니가 받는 기초수급비 20만 원 정도로는 두 가족이 한 달을 버티기에 벅차다. 파지는 1㎏당 90원으로 가장 비싼 값에 쳐주기 때문에 신 할머니는 되도록 박스류로 손수레를 채워 나간다. 플라스틱이나 버려진 도배지, 깡통 등은 1㎏당 30원밖에 받지 못한다.

어느 정도 손수레가 채워지자 신 할머니는 평소 다니던 고물상으로 향했다. 고물상으로 가는 길,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전봇대에 붙은 불법 전단지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부지런히 떼어 내 담았다. 고물상에서 받은 2천160원을 주머니에 넣은 뒤 잠시 쉬던 신 할머니는 다시 재활용품을 모으기 위해 반대편 주택 단지로 길을 나섰다.

20일 인천시에 따르면 신 할머니와 같이 인천지역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은 2014년 초 기준1천700여 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후에는 별다른 현황 파악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정부는 폐지수집 노인 현황을 점검하고 지원 방안을 파악하도록 각 지자체에 권고했다. 인천시도 당시에만 반짝 실태를 점검했을 뿐 중앙 정부가 관련 사업을 중단하자 현황을 파악하지 않고 있다.

시 관계자는 "지난해 7월 시 차원에서 일주일에 4회 이상 고물상에 다녀가는 어르신들에게 안전조끼를 배부하는 등 안전교육을 실시했다"면서도 "관련 부서에서 현황조사 및 관리를 할 수는 있겠지만 정확한 조사가 어려운 데다 정기적으로 고물상을 찾지 않는 어르신들도 많아 관리가 힘들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폐지 줍는 노인들의 복지가 사각지대에 놓이며 생계형 범죄도 발생하고 있다. 상가 앞에 놓인 빈 병 등을 주워 간 노인이 경찰에 붙잡히기 일쑤고, 지난달 25일에는 70대 노인이 고물 수집을 위해 주안동의 한 전봇대에 자물쇠로 잠겨 있던 손수레를 훔쳤다가 불구속 입건되는 등 범죄자로 전락했다.

노인복지 전문가는 "지자체의 관심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지적한다. 노인복지회관 관계자는 "시 차원에서 정기적인 폐지 수거 노인 실태조사를 통해 최소한의 보호·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연기자 khy@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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