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jpg
▲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문자는 인간이 신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세계를 해석하고 개념화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이다. 신에게 아부하기 위해 발생한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문자를 기반으로 하는 문학은 그래서 철저하게 인간 중심적이고 현실 반영적인 세계를 지향한다.

 문학은 상상력의 소산이며 금지된 것에 대해 반항을 일삼는다. 소설의 재미는 바로 이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금기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다. 이것이 구태와 지루함을 유발하는 설교나 계몽적 행태를 문학이 경계하는 이유다.

 수년째 지속되고 있는 한국 문학의 부진과 위축이 심상치 않다. 베스트셀러 명단에 명함도 못 내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도 외국 소설 일색이다. 10여 년 전 최인호, 정이현, 은희경, 전경린, 김훈 등의 이름이 대형 서점의 종합 베스트셀러 코너에 명단을 올렸던 점을 상기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외면이 최근의 표절 논란으로 인한 독자들의 실망감을 비롯하여 소설 자체에 대한 무관심에서 유발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딘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한국 소설이 심각하게 재미가 없다는 점이 바로 그 의구심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표절소설도 재미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대중소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아무리 인간의 본질과 삶의 의미에 대해서 무겁고 진지한 태도를 견지하는 이른바 순수소설이나 본격소설이더라도 재미의 룰(rule)을 빗겨 설 수는 없다.

 예컨대 김동리나 박경리, 박완서 이문열, 조정래 등의 작품이 보여주는 문학적 충격과 여운은 탄탄한 줄거리에 근거한 긴장과 전율에 기인한다. 소설의 존재 근거는 재미와 감동에 있다. 하지만 한국 소설은 지루한 묘사의 덫에 빠져 재미의 필수적인 요소인 스토리와 긴장감을 상실했다.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지배적인 이념이나 가치가 독자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해 보고 그 유용성에 대해서 질문하도록 만드는 것이야 말로 문학의 의무이다. 더불어 독자가 작품을 통하여 자신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실제로 사실인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온전한 진실인지 집요하게 묻도록 만드는 것 또한 문학의 책임이다.

그리고 이러한 책무를 발휘할 수 있을 때 문학은 비로소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전적으로 소설이 주는 긴장과 즐거움에서 가능하다. 문학을 현실에 가하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에 무리하게 가두면 안 되는 것도 이런 사정에서 출발한다.

 설교가 만연한 한국의 대표적 계몽소설인 이광수의 「무정」이 발표 당시 유림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도 자유연애라는 충격적인 스토리 덕분이었다. 재미가 소설의 적(敵)인 설교와 계몽을 이긴 것이다.

문학에 대한 독자의 요구 사항에 대해 언급했던 프랑스 작가 모파상의 주장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독자는 소설로부터 극적 전율과 긴장감을 느끼고 슬픔과 즐거움을 통해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받고자 한다.

 아무리 시각 매체가 대세인 시대더라도 문학이 주는 효과를 영상 매체가 뛰어 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소설은 말도 안 되는 억지 설정과 유치한 말장난으로 뒤범벅이 된 텔레비전의 막장 드라마보다도 스토리가 빈약하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드라마를 욕하면서 보는 것은 그나마 결말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소설은 도무지 결말이 궁금하지 않다. 끝까지 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3류 드라마는 많아도 끝까지 읽지 않고는 못 배기는 한국 소설은 이제 흔치 않다.

 시의 생명인 운율을 버리고 자유시를 선택한 한국의 현대시가 암호문 같은 내용의 난해함으로 인해 독자는 없고 시인만 북적대는 처지로 전락한 것처럼 재미없는 소설 또한 이런 전철을 밟을 공산이 크다.

 시가 그 내용의 난삽함을 벗어야 독자의 관심을 되돌릴 수 있듯이 소설은 재미의 옷을 입어여 독자의 눈길을 끌 수 있다.

 한국 소설을 살리는데 필요한 제도적 장치도 물론 있어야 하지만 독자는 잘 쓴 소설보다 재미있는 소설을 원한다는 사실을 우선 명심해야 한다. 문학은 문자는 풍요롭게 하고 인간의 생각은 문자를 통해 성숙해 진다. 한국 문학의 분발을 기대하는 바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