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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엽 (사)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교수
와튼스쿨에서 은행영업전략 고급과정을 공부할 때 <명품론>을 강의하던 교수는 "은행원은 정신자산이 명품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 가르침이 지금 것 내 모든 행동양식의 기준점이자 시작점이다. 그것은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지혜’,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 ‘오랜 기간 참고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는 의지’ 이 세 가지다.

 은행 초년병으로 재직시 상사에게 심한 질책을 들었다. 입사 2년차 본점 기획라인에서 일하면서 은행홍보에 관한 일 처리가 매끄럽지 못해 야단을 맞은 것이다. 사연인즉 여름철 바캉스 떠나는 고객들에게 나누어 줄 선물용 비닐 백을 제작하며 은행 심벌마크를 하단에 보일 듯 말 듯 그렇게 그려 넣었다고 담당 상사(부장)는 화를 내시며 샘플을 내동뎅이 친 것이다.

그래서 홍보부 디자인팀과 부랴 부랴 다시 가운데 큼직하게 은행 심벌마크를 삽입해 영업점에 배부했다. 당시 젊은 객기에 그 상사의 무지와 촌스러움을 한껏 개탄하면서 말이다. 거품과 잔잔함의 상관관계, 보여주기 위함과 실천적 삶에 대한 갈등과 충돌이었고 난 아직 그 때의 고집을 꺽지 않고 작지만 실천적인, 생색내기나 유행 쫓기가 아닌 본질에 대한 굵은 선, 오랜 시간이 지날수록 받아들일 수 있는 개념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당연히 지금 당장은 힘들고 어렵고 주변에서의 염려까지 수용해야 할 처지지만 그래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사람에겐 시간도 자산이며 세평이나 인덕, 명예도 재산이고 자본이다. 우리 연구원은 지난 토요일 인천대공원에서 인천시와 함께하는 ‘공감캠핑’이란 행사를 진행했다.

장애 자녀를 가진 부모들과 해당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17 가족 50여 명의 아주 작은 모임이었고 가족캠핑과 놀이, 비언어소통을 주제로 한 타인과의 관계자산만들기 강좌, 주변환경 정화가 목적이었다.

모두 즐거워하고 장애를 가진 몸으로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 긍정적 교류를 해보려는 열정, 어려운 몸으로 휴지 하나 스스로 줍기도 힘들지만 그래도 받은 만큼 주고자 애를 쓰는 장애아동과 그 부모들의 의지가 돋보였던 눈물 나면서도 즐거운 그런 하루였다.

 최근 기업은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또는 CSV(공유가치창출)라는 이름으로 기부나 나눔 활동을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용어에 관한 정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눔’과 ‘기부’에 생색과 치장이 따르면서 여러 곳에서 본질에 대한 변질이 당연시 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유명 기업의 오래 된 김장담그기 행사가 식전 유명인(정치인)들의 긴 인사말 때문에 폐지됐다고 한다. 또 이주민 지원을 한다는 어느 기업이 사진에 나오는 피지원자들의 피부색이 달라야 한다며 기부를 제한했다고 전해진다.

 본질에 대한 경박함과 곁눈질에 대한 당연시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단기에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전략마인드에서 비롯된 문제다. 사회적 약자인 소외계층을 위한 일은 당연히 중장기 공헌활동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규모나 양이 핵심이 아니고 작지만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사회를 보는 또 다른 눈’을 키워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연구원은 CEO아카데미를 진행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미래가치와 사회적 이슈를 조금씩 작게 실천해 나가려고 한다. 초이기적 세계관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사회공학적 구조가 우리 코앞에 다가 왔기 때문이다. ‘공유의 경제’가 이제 걸음마지만 어둡고 소외된 곳을 바라보지 않으면 내가 서 있는 그 자리 역시 어둠일 수 밖에 없다.

 밤하늘이 어두운 것은 빛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주의 빛이 다가오지 못함과 받아들이지 못함에 있다는 17세기 독일 천문학자 ‘올베르스의 역설’이 아니더라도 아주 작게, 그러나 그 빛은 오랫동안 찬연하게 내가 사는 우리 사회를 비추일 수 있게 만들고 싶다.

 장애인 가족들이 제출한 참가서류에 가족관을 묻는 항이 있었다.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함께’였다. 다음엔 내 가족 모두 참가해 조용히 성심을 다해 이웃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본 행사에 마음이나 먹거리, 생필품을 안겨 주신 후원자분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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