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라 경공은 사냥을 몹시 좋아해 촉추라는 신하로 하여금 사냥터의 짐승들을 관리하도록 했다. 어느 날 촉추의 실수로 짐승들이 몽땅 사냥터에서 도망쳐 버렸다. 경공은 몹시 화를 내면서 촉추를 옥에 가두고 장차 그의 목을 베려고 했다. 이 일을 전해들은 재상 안영이 급히 경공을 찾아가 말했다. “전하, 촉추는 실로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습니다. 그는 세가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그를 끌어내어 조목조목 그 죄업을 열거할 테니 전하께서 맞다고 생각하신다면 가차없이 목을 베십시오.” 이 말에 기분이 좋아진 경공이 안영의 심문을 허락했다. 촉추가 형리들에게 이끌려나오자 안영은 추상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촉추여, 듣거라. 너는 세가지 커다란 죄를 저질렀다. 첫째, 임금의 사냥터 관리를 게을리 해 짐승을 잃어버린 것이요, 둘째, 임금으로 하여금 보잘 것 없는 짐승 때문에 사람을 죽이도록 한 죄요, 셋째, 제후들로 하여금 이 일로 인하여 우리 임금은 사람보다 짐승을 더 소중히 여긴다는 오해를 하도록 만든 죄다. 이 같은 죄상은 우리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섬기는 임금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이니 어찌 하늘의 용서를 바라겠는가? 이제 네가 스스로 죄를 알았으니 누구를 원망하겠느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영은 형리들에게 목을 베라고 명령했다. 그때 곁에서 잠자코 안영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경공이 별안간 큰 소리로 처형을 말렸다. “멈춰라. 내가 깨달았다.” 그리고는 안영을 향해 말했다. “내가 잘못했소. 촉추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으니 그만 풀어주도록 하시오.” 인간을 짐승보다 못하게 여긴 임금의 비인륜적 처사에 맞서지도 않고 죄지은 촉추를 변호하지도 않았지만 또 다른 생각을 깨우쳐 준 명재상의 비책이다. 용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되 용서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다. 떨쳐내지 못하는 이기심 때문이다. 오늘날 한 나라를 어쩌고 저쩌고 한다는 정치권의 행태는 어떤가. 상대당 헐뜯기에 혈안이 돼도 자기당 잘못은 인정하려 들지않으니 이때 안영만한 인물의 훈수가 아쉽다.
(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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