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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상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집에 가스레인지가 들어온 게 언제였을까? 분뇨차에 청소를 의존했던 화장실에 좌변기를 설치했을 무렵이겠지? 가스레인지와 수세식 좌변기의 보급에 앞서 도시는 기반시설을 갖춰야 했고 여유가 있는 집부터 들여놓았을 것이다.

 남들 이야기 듣고 좌변기를 들여놓을 때 망설임이 없지 않았지만 가스레인지가 들어올 때 참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가스레인지 사용하기 전에 석유곤로로 조리를 했는데, 언제나 심지가 말썽을 부렸다. 그름이 생기면 심지를 일정한 높이로 잘라야 했는데 쉽지 않았고 한동안 손에 석유냄새가 남았다.

 집에 전화기와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와 같은 가전제품이 연이어 들어올 때 편리해질 생활을 기대하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가전제품들은 이제 신혼살림의 기본 준비물이다. 지금은 또 달라졌다. 신혼집의 크기와 여유에 따라 가전제품의 수와 크기가 유동적이겠지만 어떤 가전제품을 준비했는지를 비교해 행불행을 느끼는 신혼부부는 요즘 거의 없을 거 같다. 부부의 개성에 맞는 물건을 들여놓고 결혼생활을 시작해도 살림살이가 늘면 물건 줄이는 일에 골머리를 앓겠지.

 행복은 소득과 비례할까? 경제학자들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소득이 늘면 평소 갖고 싶은 물건을 소유하게 돼 기분이 좋아지겠지만 그런 행복에 한계가 있다는 거다. 소득이 어느 이상으로 오르면 행복은 정체된다는 데, 그 시점을 대략 GDP 1만 달러 수준이라고 경제학자는 지적한다.

소득이 늘면 가전제품이 고급으로 바뀌고 종류가 늘어나면서 커지겠지만 부담도 커지는 만큼 행복이 느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옷도 가구도 마찬가지일텐데, 대략 GDP 4만 달러 수준까지 소득이 늘어도 행복은 정체된다고 한다.

 소득 4만 달러가 넘으면 어떻게 될까? 행복은 오히려 줄어 든다고 경제학자는 자료를 근거로 주장한다. 질시가 없어도 그만인 소비를 부추기기 때문이라고 귀띔하는데, 이웃이나 친척이 자동차를 바꾸기만 해도 신경이 곤두서 멀쩡한 자동차에 싫증이 난다는 거다. 그래서 그런가? GDP 3만 달러가 넘어선 요즘 질투로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가 성행한다. "엄마, 우리 집은?"하며 왜 없냐는 정수기 광고가 "처형 차 바꿨어?" 하는 자동차 광고로 이어졌다. 아랍권의 어떤 부호는 수백 대의 고급 승용차를 주차장 가득 세워놓았다는데, 그는 행복할까?

 가끔 스마트폰이 없는 이를 만난다. 그를 가난할 거로 짐작해 불쌍하다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스마트폰 따위를 불필요하다 여기기 때문일 거라 믿을 텐데, 승용차도 그렇다. 승용차가 없으면 불편할 수 있어도 불행하지 않을 거라 생각할 텐데, 승용차가 없으니 오히려 생활에 여유가 생길 거라 생각해 부러울 수 있다. 휴식시간이 느는 만큼 건강이 좋아진다.

독서량도 늘어나는 만큼 정신 건강도 향상되지 않겠나. 온갖 등산용구 갖추고 둘레길을 나서는 이보다 단출한 복장으로 걷는 이가 오히려 당당하게 보인다.

 지금 우리나라 대부분의 시민은 역대 어느 왕조의 왕보다 잘 먹고 잘 입으며 잘 산다. 계절을 잃은 과일은 물론 열대과일도 손 뻗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어떤 넥타이를 매야 할지 너무 많아 찾기 어려운 세상이 아닌가? 운동화 한 켤레로 등산과 축구가 자유로웠는데 지금은 어떤가? 등산화는 물론 각종 운동에 맞는 운동화가 신발장에 수두룩하고 맑은 날 신는 조깅화는 비 오는 날 신지 않지만 석유가 지탱해주는 이런 세상은 오래갈 수 없다. 석유는 머지않아 고갈의 신호를 보낼 것이므로.

 소득 1만 달러가 될 때 늘어난 행복은 사실 천박한 기준의 평가다. 가전제품이 없던 조상은 결코 불행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낙타를 탔는데 나는 롤스로이스를 타지. 내 아들은 제트기를 타지만 아들의 손자는 아마 낙타를 탈 거야"라는 아랍의 속담이 있는데, 그때 낙타가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질서가 유발하는 소비는 불행을 잉태할텐데, 우리 소득에 불평등이 점점 커진다. 불평등이 질병을 낳는다는데, 우리는 GDP 4만 달러 시대를 앞당기려 지나치게 서두른다. 곧 총선 분위기가 감돌고, 수많은 인물이 나설 것이다. 사탕발림 같은 눈앞의 소득보다 다음 세대의 행복을 이야기하는 후보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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