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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재웅 변호사
최근 대법원에서 재판상 이혼에 대한 주목할 만한 판결이 있었다. 이 사건은 남편이 2000년 경 집을 나와 부인이외의 여자와 딸을 낳고 살다가 2013년 경에 부인을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혼외자까지 낳은 상황이므로 법률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혼인파탄의 책임은 남편에게 있다. 남편도 본인이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누가 잘못했던지 결혼생활을 계속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부관계가 파탄되었으므로 이혼을 허용해 달라는 주장이다.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우리 법원이 이혼에 대해서 유책주의(有責主義)를 택할 것인지, 파탄주의(破綻主義)를 선택할지 결정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혼청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유책주의이고, 책임유무를 묻지 않고 혼인관계가 파탄된 경우라면 이혼을 인정하는 것이 파탄주의이다.

 우리나라는 1965년 이후 유책주의 입장에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파탄주의로 입장을 전환하여 우리나라도 이번에 파탄주의로 바뀔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 사건에 대해서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공개변론까지 열면서 양측의견을 듣고 신중하게 심리했다. 결과는 대법관 13인 중 7인의 대법관이 유책주의를 지지하여 대법원의 기존판례가 유지되게 되었다.

다수의견은 유책배우자라고 하더라도 상대 배우자와 합의할 경우 협의이혼이 가능한 점, 파탄주의를 취한나라 대부분은 상대방 배우자를 보호하는 제도가 있지만 우리는 제도화 되지 않은 점, 중혼을 인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점, 아직까지 양성평등이 실현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근거로 제시하였다.

 재판상 이혼의 경우 유책배우자에게 재산분할과 별도로 혼인파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정한다고 해도 손해배상(위자료) 책임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므로 파탄주의가 유책배우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아직까지는 법원에서 인정하는 위자료가 상대방의 정신적인 충격에 대한 배상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데 있다.

 또 파탄주의는 경제적 능력이 약한 일방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측면이 있다. 아직 우리 사회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이 존재하며 특히 여성의 경우 취업 등 경제활동에 불이익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유책배우자 상대방이 이혼을 원하지 않는 이유가 경제적인 원인에 있는 경우가 많다.

 판결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파탄주의를 택한 나라에서는 이혼을 원하지 않는 일방을 특별히 보호해야 하는 경우 이혼을 허용하지 않거나 이혼을 허용하는 경우에도 유책배우자에게 상대 배우자와 자녀의 부양책임을 지우는 등 파탄주의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이와 같은 보호제도가 없기 때문에 파탄주의 도입이 시기상조라는 대법원의 견해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부부간 애정이 남아있지 않아 결혼생활의 실질이 전혀 없는 경우까지 혼인관계를 억지로 유지하게 하는 것이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

또 부부갈등이 깊어 안정적이지 못한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할 경우 자녀의 정서나 인격형성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높다. 부부관계란 부부 상호간의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므로 일방이 혼인관계의 유지를 원하지 않는 경우 현실적으로 부부관계의 실질이 유지되기는 어렵다. 유책배우자의 상대방이 경제적인 원인으로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도 애처로운 일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경제적인 보호가 필요한 경우 유책배우자 책임 범위를 확대하고 위자료도 현실적으로 늘리는 한편, 자녀 양육에 대해서도 공적부담을 확대하여 양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확대하는 등 제도적으로 유책배우자 상대방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이런 보호제도를 바탕으로 파탄주의 도입이 다시 논의되었으면 한다. 헌법은 국가에게 혼인과 가정생활을 보장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으므로 이혼 이후의 가정도 보호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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