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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제 불은초등학교장
설과 함께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삼국시대 초기부터 추석이 우리 민족의 명절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힘써 가꾼 곡식과 과일들이 익어 수확을 거두는 시기이며, 날씨가 덥지도 춥지도 않아 생활하기에 가장 알맞은 계절에, 크고 밝은 달이 뜨는 날을 맞으니 얼마나 즐겁고 풍족하였을까? 여러 명절들이 있음에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큼만’이라는 말이 생긴 것도 이 때문이리라.

 추석은 오랜 전통 만큼이나 다양한 행사와 놀이가 세시풍속으로 전승되어 왔다. 추석이 되면 조석으로 기후가 쌀쌀하여지므로 사람들은 여름옷에서 가을 옷으로 갈아입는다. 추석에 입는 새 옷을 ‘추석빔’이라고 한다.

 옛날 머슴을 두고 농사짓는 가정에서는 가족은 물론, 머슴들까지도 추석 때에는 새 옷을 한 벌씩 해주었다. 추석에 앞서 낫을 갈아 조상들의 산소에 가서 풀을 깎는 벌초를 한다.

여름동안 자란 풀이 무성하여 보기에 좋지 않고, 시들어 산불이라도 나면 무덤이 타게 되므로 미리 풀을 베어주는 것이다. 어쩌다 추석이 되어도 벌초를 하지 않은 무덤은, 후사가 끊긴 임자 없는 무덤이거나 자손은 있어도 불효하여 조상의 무덤을 돌보지 않는 경우여서 남의 웃음거리가 된다.

 추석날 아침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수일 전부터 준비한 제물을 차려놓고 차례를 지내는 것이다. 햅쌀로 밥을 짓고 술을 빚으며, 햇곡식으로 송편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는 것이 상례이다.

그리고 조상의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하는데, 추석명절 차례와 성묘를 하지 못하는 것을 수치로 알고, 자손이 된 도리가 아니라고 여겨왔다. 활동하기 좋은 계절이고 먹을 것도 풍부한 시기여서 놀이도 다양하다.

 사람들이 모여 풍물을 치면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고, 마을의 부잣집이나 그 해에 농사를 잘 지은 집을 찾아 다니면 술과 음식으로 일행을 대접했다.

지방에 따라 소놀이, 거북놀이, 줄다리기, 씨름, 활쏘기, 강강술래, 가마싸움, 원놀이, 닭싸움, 소싸움 등 다양한 놀이가 있었고, 일부는 지금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추석은 어느 지방을 막론하고 모두가 함께 어울려 즐기고, 서로 음식을 나누고 베푸는 후한 인심을 보이는 명절이다. 비록 급격한 사회변화와 산업구조의 변화로 그 절실함이 감소되었지만, 풍요에 감사하고, 조상을 추모하며 근본을 잊지 않기 위한, 추석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계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려한 필치와 문체로 역사서로서의 가치는 물론 문학으로서도 큰 가치를 가진 서적으로 평가받는 사기의 화식열전에서 태사공 사마천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歲時無以祭祀進醵(세시무이제사진갹) : 세시(歲時)가 되어도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지 못하고,

 食被服不足以自通(음식피복부족이자통) : 가족들의 음식과 옷이 부족하여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려우면서도,

 如此不慚恥(여차불참치) : 이를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면,

 則無所比矣(즉무소비의) : 비할 수 없이 못난 사람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추석연휴에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외지에 나가있다가도 명절이 다가오면 귀가하여, 벌초와 집안 청소로 성묘와 차례 준비를 하던 전통 풍습과는 상반되는 흐름이다. 차례를 지내는 것도 미신이나 종교적인 이유로 회피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성묘나 차례는 우리의 뿌리인 조상을 추모하고 근본을 잊지 않는 追遠報本(추원보본)과, 대자연에 대한 경외와 감사의 표현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대대로 이어온 우리 민족문화이며 아름다운 전통이다. 비록 놀이나 풍습은 변할지라도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에 걸맞게, 함께 어울려 서로 나누고 배려하는, 진정 풍요로운 한가위 정신이 변함없이 이어지기를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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