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1일 비주류의 대표직 사퇴 요구를 재신임투표 카드로 돌파하며 대표직을 유지한 것은 근래 야당사에서 찾아보기 드문 사례 중 하나다.

대부분의 야당 대표가 총선, 지방선거, 재·보선 등 중요 선거에서 패배했을 때 자의든, 타의든 사퇴 압박에 시달리며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일종의 관행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열린우리당이 2004년 1월 첫 당의장을 배출한 이래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에 이르기까지 11년 8개월간 지도부가 교체된 횟수는 모두 27회로, 지도부 평균 수명은 5개월에 불과하다.

통상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대표의 임기가 2년임을 감안하면 임기의 ¼도 못 채웠다는 뜻이다.

정동영 초대 당의장은 2004년 4·15 총선 다음 달인 5월 의장직에서 물러나며 4개월 만에 대표직을 마감했고, 두 번째 당의장인 문희상 의원 역시 2005년 10·26 재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6개월 남짓 만에 사퇴했다.

이듬해 2월 정동영 전 의원이 다시 당의장으로 컴백했지만 5·31 지방선거에서 대패한 뒤 이튿날 곧바로 사임했다. 2008년 7월 다시 취임한 정세균 대표는 2010년 지방선거 승리를 견인했지만 같은 해 7·28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퇴진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2012년 1월 대표직에 오른 뒤 4·11 총선 패배 직후 사퇴해 3개월짜리 ‘단명 대표’에 머물렀다. 지난해 3월 출범한 새정치연합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 체제 역시 7·30 재보선 참패로 4개월여 만에 막을 내렸다.

그나마 임기를 채운 사례는 손학규 대표다. 2010년 10월 취임한 손 대표는 2011년 12월 야권 통합를 성사시키며 명예롭게 퇴진했다. 그러나 손 대표 역시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단일화에서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이기자 사퇴 의사를 밝힐 정도로 위기를 맞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새정치연합은 전당대회로 뽑은 정식 대표보다 지도부 공백을 메우기 위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일상화된 비정상 상태가 반복됐다.

이런 현상은 친박(친박근혜), 비박(비박근혜)으로 비교적 단순화된 계파 구도를 가진 새누리당에 비해 새정치연합은 소계파주의가 득세하며 끊임없이 권력투쟁을 벌여온 당내 지형에서 파생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풍토는 당이 지향하는 가치나 정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지지층에 불안한 정당으로 비쳐 표의 확장성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요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잦은 지도부 교체는 소수 계파 대표가 절대 안정세력을 확보하지 못한 데 기인한다"며 "작은 선거 패배에도 교체되는 불안정성을 해소하려면 소계파주의를 근본적으로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표가 재신임 정국에서 살아남은 것은 친노 주류라는 당내 기반에다 대선주자로서 일정한 지지층을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어서 이번 사례를 계기로 당의 체질이 바뀌긴 어렵다는 비관론도 적지 않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새정치연합이 큰 선거에서 계속 지고 계파 간 충돌이 일상화돼 있어 계파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앞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문 대표가 이념, 지역, 세대에서 중도층을 끌어안아 지지율 상승으로 연결시키지 못한다면 결국 ‘반쪽 재신임’에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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