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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제훈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
아시아가 지역통합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가깝게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이고 좀 더 멀리는 1990년대 들어와 동서 해빙기가 시작되고 1991년 12월 소연방의 해체로 동북아에서 냉전체제가 해체되기 시작한 이후이다.

냉전 체제에서는 미소 초강대국을 수장으로 하는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 세력 갈등을 일으켜 왔기 때문에 동북아 더 나아가서 아시아 각국이 줄서기에 바빠 자신들을 돌아보기 어려웠다.

 우리나라도 90년대 들어와 노태우 정권 때 그 전에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북방정책을 추진하여 소련과의 국교수교가 이루어졌다. 외환위기가 일어나자 미국이 주도하는 IMF는 우리에게 가혹한 구조조정을 조건으로 구제 금융을 지원해주었다.

반면 중국은 주변국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감안해서인지는 몰라도 위안화를 평가절하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각국이 미국만을 처다 봐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 이때부터이다.

80년대 이후 두 자리 수 고속성장을 지속해 경제력을 키워 온 중국이 자연스레 아시아의 맹주로 부상하는 가운데 경제면에서 아시아의 지역통합 움직임이 결실을 맺은 것이 치앙마이 이니셔티브이다.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아시아 각국이 상호 긴급 유동성을 지원해주는 메카니즘으로서 동아시아 차원에서 경제협력을 제도화한 첫 번째 사례이다.

 2000년대 들어와 아시아 지역통합은 동남아 10개국 간 지역협력체인 아세안을 중심으로 발전해 오게 된다. 한중일 삼국은 소위 아세안+3이라는 시스템으로 아세안 체제에 편승하는 형식으로 아시아경제협력 메카니즘에 참여하게 된다. 이 시스템에서는 형식적인 주도는 아세안이 하고 한중일 삼국은 일종의 손님으로서 수동적 역할만을 해 왔다.

경제력 면에서 이 시스템 전체의 90%를 차지하는 한중일 삼국이 따로 만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위기 즉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이후이다. 2008년 12월 그 간 일본의 역사교과서 도발 등으로 거의 만나지 않던 삼국 정상이 경제위기 공동대응을 명분으로 만난 것이 일본 후쿠오카 삼국 정상회의였다.

 이 때 합의 사항 중 하나가 삼국 간 정상회의 등 삼국 협력을 주관할 공동사무국의 설립이었다. 처음에는 디지털 사무국의 설립으로 이야기되다가 실제 사무국의 설립으로 결실을 보게 된 것이 2011년 서울 한중일 삼국협력사무국(TCS)의 개설이었다.

 아시아공동체 또는 지역통합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1990년대 이후 많은 변화를 보여 왔다. 1990년대 외환위기에 대한 대응에서 보듯이 중국은 당초 지역통합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와 국력의 급격한 상승에 따라 아시아 지역통합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방향으로 입장이 선회하게 된다. 아세안+3시스템을 활용하여 아시아경제통합을 주도하려는 것이 한 예이다.

그러나 중국의 주도에 대해 일본과 미국의 견제가 뒤따르게 되었다. 일본이 인도와 호주, 뉴질랜드를 참여시켜 중국의 주도권을 희석하려 한 것이 아세안+6 시스템이다. 현재는 아세안+6가 아시아경제협력의 주요 트랙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중국 주도의 아시아 경제통합 메카니즘에 대한 견제로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주변의 견제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 제기되어 온 IMF체제개혁에 대한 기득권을 쥔 미국의 반대에 대한 대응책의 하나로 나온 것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구축이다.

 이것은 시진핑 주석의 보다 큰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 帶一路, 이다이이루, one belt one road)구상의 하나로 추진되어온 것으로 기존 미국주도의 서방 금융체제를 우회하여 우선 중국이 비교우위가 있는 실물 부문에 대한 위안화 투자로 국내 투자처의 포화상태를 극복하면서 아시아주변국의 지지를 얻어내는 일석이조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중국 경제의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금년도 성장률이 6%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과 더불어 중국 증시의 폭락 등으로 중국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그 간 중국공상당의 리더십을 근간으로 하는 소위 베이징 컨센서스가 이미 약효를 다 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이 미국처럼 패권을 추구하면서 상호 갈등을 일으키는 것보다 명분에서 앞서고 실리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대국으로서 아시아 주변국에 대해 보다 많이 베풀고 우리나라 같은 중견국을 내세워 아시아 지역통합을 진지하게 추진하는 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AIIB 본부를 베이징에 두지 말고 우리나라 서울에 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면 너무 과한 욕심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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