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의미의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 시기는 1949년 7월 4일 제정된 ‘지방자치법’부터다.

이후 12년 동안 다섯 차례의 개정을 거치며 이어진 지방자치법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를 거치며 박정희 정권에 의해 중단된다. 1961년 5월 군사정권은 ‘군사혁명위원회 포고’ 제4호를 통해 전국의 지방의회를 해산시켰다.

그렇게 중단됐던 지방자치는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다시 거론되기 시작한다.

1987년 6월 10일 인천을 비롯해 전국의 22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지역사회도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고, 시민사회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1988년 여소야대의 13대 국회가 출범하면서 지방자치 부활이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과제로 논의됐다.

1990년과 1991년의 제9차, 제10차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지방자치는 중단된 지 30년 만에 광역·기초의회 의원 선거로 재개의 물꼬를 텄다. 1981년 경기도에서 떨어져 나와 인천직할시로 승격된 인천 역시 지방자치의 첫걸음을 내딛게 됐다.

# 30년 만에 의회 의원 선거 치렀지만 기대와는 달라

1991년 실시된 지방의회 의원선거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미룬 상태에서 치른 불완전한 선거였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최초로 제도화된 지방정치의 공간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컸기에 어떤 인사들이 제도 정치에 진출했는지도 관심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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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의회 본회의를 참관하고 있는 청소년들.


그러나 초기 지방의회는 과거 비민주적 정권의 지역 기반이었던 관변단체 관계자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기회가 됐다. 이들은 1987년 이후 재정 지원 축소, 외부로부터의 비판에 직면해 어려움을 겪다 지방의회에 진출해 지역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다. 1991년 3월 북구(부평구)의회 의원으로 당선돼 활동했던 현 홍미영 부평구청장은 당시 북구의회와 인천시의회를 합해서 새마을운동, 자유총연맹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만 20%가 넘었던 것으로 회고한다.

당시 북구의회 의원 44명과 시의회 의원 27명 중 관변단체인 새마을운동과 자유총연맹, JC(한국청년회의소) 경력을 지닌 이들이 각각 14명, 5명, 12명으로 조사된 바 있다. 또한 지역 활동도 시·구·동정 자문위원회나 청소년 선도위원, 평화통일자문위원, 경찰서 대공지도위원 등 지역 행정 조직이나 정권이 만든 조직에서 경험한 사람들이 다수였다.

더구나 오랜 기간 지방자치에 대한 기대와 열망과는 달리 전국 평균 투표율이 55%에 불과했고, 후보자의 참여가 저조해 무투표 당선자가 총 614명에 이르는 등 초기 지방자치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같은 해 6월 열린 광역의회 의원 선거 역시 58.9%의 낮은 투표율을 보였으며 20~30대의 무관심, 지역정당의 구조적 한계가 나타나는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당시 광역선거는 10% 내외의 지지율을 보였던 민자당이 73.3%로 광역의회를 장악하기도 했다.

# 인천 민선 단체장 취임 1년, 시민들은 어떻게 느꼈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우여곡절 끝에 1995년 6월 단체장과 의회 의원선거를 함께 진행하는 동시선거 방식으로 치르게 된다. 인천시 역시 적지 않은 기대와 우려 속에 민선 단체장을 배출하는 지방자치시대가 출범한다. 그러나 민선 단체장 취임 1년이 지난 1996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그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당시 인천시민포럼과 신종화·김원수 시립인천전문대학 교수는 지방자치제 1주년을 맞아 시와 구 행정에 시민들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에 대한 ‘지방자치제 1주년 평가 시민 의견조사’를 실시했다.

인천시민들은 지자체장 직선제로 행정에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절반에 가까운 42.2%가 ‘모르겠다’고 답했다. 또한 ‘변화가 없었다’는 응답도 33.7%로 나타나 시민들은 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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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와 시의회의 역할을 고민하는 인천시의회가 전문가를 초청, 강연을 듣고있다.
제로 인한 행정의 변화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와 ‘변화가 있었다’는 응답은 총 16.8%에 불과했다. 변화가 있었다고 응답한 사람 중에는 32.8%가 ‘행정서비스 개선’, 28.9%가 ‘공무원의 친절성’을 꼽아 민선 단체장의 취임 이후 지방정부의 행정서비스 및 공무원의 민원 태도가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부정적인 부분은 27.2%의 시민이 중앙정부 또는 자치단체 간의 협조 미비를 응답하는 빈도가 가장 높았다. 이어 지역 이기주의의 심화(13.4%), 선심성 정책(13.4%), 지역 간 격차해소 기회의 상실(10.1%)순으로 조사됐다.

이 외에 시장이 가장 관심사항으로 삼아야 할 문제로는 절반이 넘는 56.2%가 환경·교통 등 도시기본 문제를 꼽았으며, 지역 간 생활환경 격차해소를 위해서는 40.4%의 시민이 구청장 및 시장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으며, 의회 활동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34.5%)가 긍정적인 평가(20.6%)보다 높게 나타났다.

# 인천의 지방자치 자리 잡기 위한 지역사회의 고민

인천에서 지방자치를 자리 잡기 위한 고민은 계속 이어진다.

1997년 민선 지방자치 2주년을 맞아 인천시와 인천발전연구원은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지방자치 평가와 발전 전망’ 토론회를 진행했다.

당시 기조발제에 나선 김광웅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는 "자치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사권과 재정권 면에서 지자체들은 아직도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며 "‘기관장이 결심하면 추진한다’는 식의 폐쇄적 의사 결정체계가 그대로 지속되고 있는 점, 지방의회 의원들의 정치 역량 역시 아직 미지수라는 점 등은 난제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시의회 차원의 자성의 목소리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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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부의 과거사 왜곡 교과서 채택에 항의하고 있는 인천시의원들.


정명환 인천시의회 부의장은 "상당수의 의원들이 지방의원직을 출세의 증표로 삼고 있으며, 이로 인해 권위주의적 태도와 집행부에 대한 고압적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있다"며 "의원 스스로가 전문성을 제고해 능력을 계발하고, 주민참여의 폭을 확대하기 위해 남은 임기 동안 새로운 각오로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창섭 인천시 기획관리실장은 "지방자치 실시 이전 지방공무원들은 자율성이 다소 부족했고, 중앙부처에 의존적인 자세가 있었다"며 "그러나 민선자치 이후 공무원들이 능동적으로 일하려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시 차원에서도 지난 2년간 공무원들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미국과 중국 등 외국 대학에 10명의 어학연수를 실시했다"고 말했다.

# 100년 후의 성숙한 지방자치, 인식 개선으로 시작해야

지방자치 발전에 대한 고민은 수십 년 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승종 서울대 교수는 "성숙한 지방자치로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방자치가 효율을 저해하는 성가신 정치제도가 아니라 국민복지 증진과 지속가능한 국가 발전을 위한 초석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지방자치에 대한 중앙과 지방 간, 그리고 국민의 협력적 노력이 요구된다"고 조언한다.

 이 교수는 향후 100년을 바라보는 성숙한 지방자치를 위해 ▶목적지향 패러다임의 중시 ▶분권화 진전 ▶지방정부의 책임성 강화 ▶주민참여 활성화와 주민의식 제고 ▶지방자치의 여건 개선 등을 발전과제로 제시한다. 그는 "기본적으로 지방자치가 정부나 공직자를 위한 것이 아니며,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패러다임이 변해야 할 것"이라며 "분권화를 적극화하기 위해 조례 제정권 강화, 재정분권, 사무이양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병기 기자 rove0524@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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