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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100년의 역사를 가진 기업이 있다. 이 기업은 인천항과 함께 업력(業歷)을 키워 왔다.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 기업이자, 인천항이 황해권 물류 중추항으로 도약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영진공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61년 인천시 중구에 설립된 영진공사는 인천을 대표하는 국제복합물류 전문기업으로 지난 반세기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헌신해 왔다.

본보는 창사 40주년을 맞아 ‘향토 기업 100년을 꿈꾼다’란 주제로 아시아권 수출입 물동량이 크게 감소한 상황에서도 동북아 물류 네크워크 구축을 통한 발전 전략과 미래 비전을 실천하며 인천항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영진공사를 조명해 봤다.

21세기 종합물류산업을 대표하는 인천의 대표적 향토기업 ㈜영진공사는 1961년 4월 15일 창립됐다.


설립자인 고(故) 이기성 회장은 ‘인화 단결·창의 발휘·성실 근면’의 사훈 아래 1998년 타계하기 전까지 인천상공회의소 회장을 3대에 걸쳐 역임하며 인천 경제 발전에 초석을 다졌다.

현재는 부친의 유지를 이어 받아 아들인 이강신 회장이 ‘글로벌 리더(Global Leader) 영진’을 모토로 사세를 확장해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영진의 국내 주요 업무 영역으로는 항만 하역과 CFS(컨테이너 적입·적출 작업 창고) 보관, 해사 및 골재 등 건축자재 제조·판매업 등이 있다.

또한, 영진은 1996년 인천 남항에 민자부두를 건설하고 인천∼중국 웨이하이(威海)시를 정기 운항하는 ‘뉴골든브릿지호’의 하역 및 운송 업무를 진행하는 한편, 정부로부터 종합물류 기업으로 인증받아 복합물류 및 3PL(제3자 물류)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해외 사업으로는 1977년 중동의 바레인 국제공항과 미나슐만항의 하역계약을 체결한 이래 현재까지 매달 30만t 이상의 화물을 처리해 연간 1천만 달러 이상의 외화를 획득하고 있다. 해외 현지에서 내국인을 비롯해 제3국인 등 500여 명을 고용함으로써 일자리 창출 및 국위 선양에도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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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영진공사를 비롯해 영진티앤엠㈜과 ㈜영진GLS, ㈜영진운수 등 13개 관련 계열사 1천여 명의 직원과 3천억 원의 매출을 실현하는 중견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인천항 발전의 산증인이자, 인천의 역사와 함께 걸어 온 영진은 향후 인천과 평택 당진항을 중심으로 전국 물류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다.

여기에 대중국 사업을 확대해 해외 유수 물류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해 동북아 물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3PL서비스를 통한 종합물류 기업으로 입지를 넓히겠다는 전략이다.

아울러 ‘기업 이윤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기업 이념에 따라 지역 사회 소외계층 및 각종 단체에 지속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예정이다.

현재 영진은 중구 관내 차상위 계층에 대한 의료 보험료 지원 및 사옥 주변 거리 정화 행사, 사랑의 김장 나누기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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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기업 내·외부적 공로를 인정 받아 2006년 ‘금탑산업훈장’과 2008년 ‘장보고 대상’, 2013년에 ‘인천시 산업평화 대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이강신 회장은 "향토기업은 대기업과 달라야 한다"며 "지역 사회와 함께 부침을 거듭하며 성장·발전해 온 영진은 앞으로도 기업의 소명의식(사회 환원)을 잊지 않고,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하며 사랑받고 존경받는 기업으로 입지를 넓혀 가겠다"고 밝혔다.

#이강신 영진공사 회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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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년의 역사를 지닌 영진공사가 앞으로 100년을 이어갈 향토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지역 주민과 더불어 발전하는 기업을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천의 90만 상공인을 대변하는 인천상공회의소 ‘제22대 수장’이자 인천항 발전을 선도해 온 ㈜영진공사 이강신(62) 회장의 기업가 정신이다.

38년간 변함 없이 영진을 지켜온 그에게도 두 번의 큰 시련이 있었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위기와 2003년 시작된 이라크 전쟁이 바로 그 시기다.

 이 회장은 "IMF로 인해 내수가 침체되고, 영진의 계열 금융사였던 흥성상호신용금고까지 폐업하게 되면서 경영상 많이 힘들었다"며 "그 위기를 어렵게 극복했는데, 연이어 이라크 전쟁이 발발해 중동과의 교역에 큰 차질을 빚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다른 기업들은 중동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지만 영진은 전쟁의 위기 속에서도 바레인에서 철수하지 않아 결국 중동 국가들로부터 큰 신임을 얻는 ‘전화위복’의 사례를 남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회장은 고(故) 이기성 회장이 기업을 설립한 이후 부단한 노력과 도전 정신으로 영진의 초석을 다지고 지역 경제를 이끌어 왔듯이, 기업을 영위함에 있어 이윤 확대와 기업 확장보다는 국위 선양과 지역 경제 발전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이 회장은 "수도권정비계획법 등 각종 규제가 큰 애로사항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정부와 인천시는 각종 규제를 과감히 풀고, 친기업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국 기자 kj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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