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의 세대라면 매번 새학기마다 연례 행사처럼 해야 했던 일이 있다.

 학교에서 받은 새 교과서를 투명한 비닐이나 해가 지난 달력으로 표지를 포장하는 일 말이다.

 개학 며칠 앞두고 밀린 방학숙제를 하기에도 바쁜데 책 표지를 일일이 싸게 하고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이면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했던 부모님이 그렇게 야속하게 생각됐었다.

 그러나 이제 내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가 되니 그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된 듯하다.

 배움을 주는 책이니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대한민국은 눈부신 경제 성장을 거치면서 교육 환경 역시 크게 변화했다.

 기호일보 창사 40주년을 맞아 40여 년간 교편을 잡았던 임용담(64) 전 안산교육장에게 그동안 변화해 온 교육환경에 대해 들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교육 방향을 짚어봤다.

임용담 전 안산교육장과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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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여 년 전 교편을 처음 잡았을 때 교육 환경과 지금의 교육 환경은 차이가 많을 것 같은데

 ▶ 1972년 3월 처음 교편을 잡아 2013년 2월 28일자로 퇴직했다. 41년 동안 교사, 교감, 교장, 전문직 공무원으로서 교육계에 몸담았다.

 대한민국이 가파른 성장곡선을 그릴 때 교편을 잡은 셈이다. 보릿고개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 교육이 변화해온 과정을 몸소 느낀다. 과거에는 한 반에 60명 이상은 기본이었고 많게는 90명도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기도 했다.

 현재 각 급당 평균 학생 수는 27명으로 알고 있는데, 그만큼 학생이 줄어들었다. 동료들과 이 문제를 두고 이야기하던 중 한 동료가 전라도 신안군의 경우 교가에 ‘1천 건아’라고 학생 숫자를 의미하는 가사가 들어가는데 학생 수가 100명이 채 되지 않는 지금, ‘교가도 바뀌어야 하지 않나’라는 우스갯소리도 했다. 교육원로들의 경우 그만큼 학생 수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체감한다는 뜻이다. 학교 건물과 시설도 차이가 크다. 초임 시절 기억하는 학교 건물의 형태는 일자형 구조였다. 주로 1~2층짜리로 남향이 들어 따로 냉난방 기구를 사용하지 않아도 따뜻하고, 또 시원했다. 그러나 지금은 복층에 자연체감형 건물을 짓기 쉽지 않은 것 같다.

 -초등학교에 학생이 없다. 학교 운동장을 떠나는 학생들에 대한 생각은?

 ▶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하드웨어 측면도 함께 변화했다. 2010년쯤 교육연수를 위해 일본으로 출장을 가게 됐는데 당시 학교 교실 안에 컴퓨터가 없었다. 의아하기보다 다행이고 부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이들에게 전자기계 보급이 늦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교사와 학생들 간의 상호작용이 많아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큰 스크린만 쳐다보고 수업을 하는데, 교사와 학생 간의 수업이라기보다 스크린과 학생 간의 수업처럼 느껴진다.

 -현재 교육계 현안은 누리과정이다. 누리과정은 3~5세 영유아들의 교육여건 개선과 보육지원을 위한 정책인데, 당시의 영유아 교육 여건은

 ▶ 인성중심 교육과 지식중심 교육 사이를 오가다 인간중심 교육과정이 자리 잡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자아를 실현해 지적, 기능, 정서 모두가 올바른 인간으로 길러 개인의 꿈을 실현해주는 교육이 요즘 트렌드다. 과거에는 지금과 달리 육성회비를 내는 등 어느 수준에 있어서는 학부모가 교육비를 부담하는 형식의 선별적 복지가 실행됐다. 그러나 이 방법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현재 보편적 복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학부모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인성교육까지 국가의 책임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100% 무상교육을 하면 좋겠지만 재정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급작스러운 변화보다 책임을 질 수 있는 선에서 복지가 마련돼야 한다. 현재도 누리과정이 시끄러운 이유는 유치원은 교육부,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가 관리하는 등 지원 체제가 이원화돼 있어서다. 보육과 교육을 일원화시키는 등의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국비 지원이었다가 도비 지원으로 변동되는 등의 행정은 100년을 내다봐야 할 교육미래와 어울리지 않는다.

 -교사 행정업무 경감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는 등 행정업무 과중화 현상이 심한데 과거에는 어땠나

 ▶ 교사 행정업무 경감에 대한 문제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대두됐다. 무엇보다 관리자, 교사, 일반 행정직 모두가 주업무와 잡무에 대한 생각을 제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주업무 외에도 그 뒤를 따르는 업무 역시 교육에 필요한 업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행정업무도 교육에 필요하다면 주업무가 될 수도 있다. 교육에 꼭 필요한 한 부분인 학생들의 체험학습 준비도 잡무로 보기보다 주업무로 생각하는 편이 맞다. 잡무는 줄이고 주업무에 대한 인식의 전환도 필요한 시점이다.

 -학생 인권조례 등 좁아지는 교편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는 교사도 있다는데 이에 대한 의견은?

 ▶ 담임으로 재직할 당시, 학부모 총회가 열리면 먼저 교직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교직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을 바꿔주거나 전학을 보내준다고까지 말했다. 그만큼 교직관에 확신이 있었다. 담임교사가 본인의 교육관을 세우고 그 교육관을 학부모와 제대로 약속한다면 교권은 추락하지 않는다. 즉 교사가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요즘은 사명감을 가지고 교사가 되기보다 안정성을 바라고 교사가 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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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초임 때부터 교사 윤리관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 한편으로는 교사도 인턴 기간을 둬 역량을 평가한 다음 임용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어떤 사명감도 없이 아이들을 대한다면 학생과 학부모들에게도 신뢰를 잃게 된다. 반면 한 아이의 교육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교육한다면 교권추락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된다.

 -과거 ‘경기교육신보’가 학교에 배포됐다고 하는데 혹시 기억하는지. 그때 당시 교육신보의 역할은 어땠나.

 ▶ 1973년 박정희 정권은 ‘1도(道) 1사(社) 언론정책’에 따른 ‘경기 3사 통폐합’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때문에 이후 15년 동안은 지금처럼 신문이 많지 않던 언론 공백 시대였다. 이 암흑기 동안 해직 언론인들이 모여서 만든 신문이 바로 경기교육신보로 기억하고 있다. 당시에 신문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경기교육신보는 교육계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언론이었다. TV 보급도 많지 않았던 시대였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소식을 궁금해 했지만 알 수가 없어 답답했는데 경기교육신보는 그런 갈증을 해소해줬던 고마운 기억이 난다. 요즘에는 교육과 관련된 전문지가 갈수록 없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

 -긴 세월 교직에 몸담은 한 사람으로서 혁신정책 등 정책방향이 많은데, 앞으로의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나

 ▶ 우리나라 교육이 획기적으로 바뀌려면 대학 입시 제도와 운영 방침이 바뀌어야 한다.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어 입학생보다 졸업생이 더 많은 요즘 현실에서 입시 제도를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대학 역시 종합대학의 역할을 하기보다 전문대학의 역할을 해야 한다.

 ‘A대학은 B과가 유명하다’라는 식으로 대학들이 자체 고유 브랜드를 가져야 한다. 종합적인 것을 배우기보다 전문적인 능력을 향상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아침 라디오에 자기 아들을 소개하는 한 팔불출(?)어머니의 사연이 소개됐는데, 그 아들이야말로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라고 생각해 무릎을 탁 쳤다. 전문대학교를 졸업해 일찍이 사회생활을 한 사연 속 아들은 같은 회사 10년 장기근속 휴가를 어머니와 함께 했다. 10년 전 사별해 힘겹게 아들을 키운 어머니를 위해 도리를 다한 것이다.

 교육의 기본은 아이들의 인성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 목적 역시 이런 아이들을 길러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단하지는 않아도 본인의 자리에서 도리를 다하는 사람을 길러내야 한다. 사연을 듣는 말미에 한편으로 지식만을 강조하는 지금의 교육이 생각나 씁쓸하기도 했다. 부모는 부모답게, 교사는 교사답게, 학생도 자신의 도리를 다한다면 이보다 좋은 교육 정책은 없을 것이다.


 #임용담 전 안산교육장 프로필

▶ 1972년 목포교육대학 졸

▶ 1972∼2013년 전남·경기도에서 교직생활

▶ 2006년 포천교육청 학무과장

▶ 2007년시흥교육청 학무과장

▶ 2009∼2011 경기도교육청 초등교육과장, 교수학습지원과장

▶ 2011년 경기도안산교육지원청 교육장, 현 경인교육대학교·안산대학교 출강

문완태 기자 myt@kihoilbo.co.kr

김가현 기자 hyun@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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