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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이별을 경험한다.이별 끝에 우리는 방황하고 아파하며 외로워 한다. 그러나 이내 또 다른 타인들과 관계 맺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별 후 우리를 아프게 하는 주체는 떠나버린 사람만은 아니다. 함께 마주보고 이야기하고 호응하며 키워간 따뜻했던 감정들 또한 우리가 그리워하는 대상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커뮤니케이션이 다각도로 기계화 된 오늘, 우리는 이메일 체크와 문자 확인, SNS 활동 등을 통해 비대면적인 대인관계를 확장해 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스마트 기기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일까, 휴대전화 배터리의 충전 정도는 우리의 불안지수와 반비례하며 지금도 곁에서 함께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계와 사랑에 빠질 수도 있을까? 없으면 불안하고 곁에 있어야만 안정이 되는 그 감정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기계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까? 오늘은 소프트웨어와 사랑에 빠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SF 영화 ‘her(그녀)’를 소개한다.

시대를 정확히 할 수 없는 가까운 미래, 테오도르는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그녀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육체를 가진 로봇도 아니다.

그녀는 소프트웨어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OS1이 그녀의 상품명이다. 테오도르가 사만다라 부르는 이 OS1을 만난 데에는 인간관계에 지친 그의 우울한 마음도 한 몫을 한다.

 오랜 시간 사랑했던 여인과 달콤한 연애 끝에 결혼까지 했지만, 현재 그는 별거 중에 있다. 보다 정확이 테오도르가 이혼서류에 도장만 찍으면 정리 될 관계이다.

 그는 아내와의 이별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일년의 시간만 끌어오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감정에 지지부진한 까닭에는 그의 직업도 영향을 미친다.

 ‘아름다운 손 편지 닷 컴’이라는 회사에서 타인의 편지를 대신 작성해 주는 대필작가로 활동하는 그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편지문구를 잘 뽑아내기로 정평이 나있다.

 남의 감정을 대신 끌어내느라 자신만의 감정을 모두 소진한 탓일까. 그는 개인적인 감정표현을 자제했고, 건조했으며, 외로웠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언제나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으며, 공감을 얻고 싶었다.

그렇게 테오도르는 OS1을 구매하면서 사만다를 만났고, 똑똑한 인공지능 프로그램 덕에 사만다는 그가 원하는 말을 언제나 먼저 해 주었고,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다.

그렇게 잊고 지냈던 관계성의 따뜻함을 느끼게 되면서 테오도르는 소프트웨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다행이 사만다란 이름의 운영체제도 그의 사랑을 받아들여 둘 사이는 진지한 단계로 발전하게 되지만, 사랑이 깊어질수록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문제들이 이들 앞을 가로막는다.

과연 인간이 기계, 그것도 형체가 없는 소프트웨어와 사랑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 일까? 그것이 과연 사랑일까? 지극히 뻔하지만 어려운 질문 앞에 사만다와 테오도르는 자신들만의 답을 찾아 나선다.

영화 ‘her(그녀)는 2014년 제 71회 골든 글로브시상식을 비롯해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가장 독창적인 로맨스’라는 찬사를 받은 화제작이다.

감독이 직접 집필한 독창적인 시나리오와 기발한 소재, 재치 있는 상상력 그리고 감각적인 영상미와 주연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력까지 더해져 이 작품은 개봉 당시 관객과 평단의 많은 지지와 찬사를 얻어내었다.

인간과 기계의 사랑이라는 소재로 인해 이 작품은 SF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사랑하고 사랑 받고 싶어하는 관계 맺기의 본질에 대해 색다른 시각으로 다가가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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