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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하기 칼럼니스트/작가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얼리버드 형이다. 새벽공기는 하루를 신선하게 하고 일출의 햇빛은 발걸음을 힘차게 한다.

 로마에서 마지막 아침을 호텔 빌라 델 폰테의 언덕길을 산책하면서 보냈다. 아침을 간단한 양식으로 먹고 카포치 버스를 타고 피렌체로 향했다.

 이번 유럽여행에서 피렌체를 벼르고 왔다. 왜냐하면 내가 쓰고자 하는 소설의 한 무대이기 때문이다. 다빈치의 흔적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과 밀라노의 스포르체스코 성에서 찾았고, 다빈치의 고향 피렌체에서 본격적으로 다빈치를 만나야 한다.

 그러나 막상 피렌체에 도착하고 보니 다빈치 대신 그의 라이벌인 미켈란젤로와 먼저 부딪쳤다. 시뇨리아 광장에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알몸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아직도 다비드의 작은 잠지가 움츠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까지 그의 잠지를 일으켜 세울 만한 관능적인 미색을 만나지 못한 모양이다. 미켈란젤로의 삼대 걸작 조각상은 피에타, 다비드상, 모세상이다. 피에타는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 뿔 달린 모세상은 로마의 빈콜리 성당에 있다.

 금융자본가 메디치는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소년시절부터 알아보고 그를 전적으로 후원했다. 하지만 같은 피렌체인인 다빈치는 고향에서 홀대를 받았다.

다빈치는 공증인의 사생아로 태어났는데 만약 사생아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다빈치가 메디치가로부터 후원을 거절당하고 또 동성애 사건에 연루되어 기소되자 미련 없이 피렌체를 떠나 밀라노 대공 스포르차 밑으로 갔다.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일하고 죽는다. 그는 밀라노 대공 밑에서 비로소 미술 식물학 광학 수력학 천문학 해부학 분야에서 재능을 꽃 피웠고, 잔인한 대공을 위해 각종 전쟁무기와 고문도구를 제작해 바치기도 했다. 천재의 마음을 다 이해하기는 힘들다.

 거룩한 걸작 ‘최후의 만찬’을 그리는가 하면 인체해부를 위해 온몸이 잘리고 피부가 벗겨진 시체와 평생을 함께 지내기도 했다. 채식주의자에다 동성애자이고, 글씨를 뒤집어쓰고 때로는 새장에 갇힌 새를 놓아주는 휴머니스트이기도 했다.

 다빈치의 또 하나의 걸작인 ‘모나리자’는 이곳 피렌체에서 탄생했다. 밀라노가 프랑스에 의해 함락되었기 때문에 다빈치가 다시 그의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모나리자도 대부분 그의 그림의 운명처럼 미완성으로 끝났다.

 한 작품을 하다보면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그 걸 시작하면 또 다른 발상이 떠올라 그는 밑그림만 잔뜩 그렸을 뿐 실제로 완성한 그림은 몇 작품 되지 않았다. 피렌체에서 태어나 다빈치처럼 홀대받은 또 한명의 천재가 있다. 신곡을 쓴 단테다.

우리는 정감 어린 피렌체 뒷 골목길을 걸어 단테의 생가에 도착했다. 약간의 규모가 있는 돌집이었는데 단테는 1265년 이곳에서 태어났으나 시인 특유의 반항적 기질 때문에 고향에서 쫓겨나 평생을 방랑하다 라벤나에서 사망했다.

뒤늦게 피렌체가 단테의 시신을 가져오려고 했으나 라벤나가 내놓지 않아 지금도 단테의 죽음을 기념할 때는 피렌체시가 라벤나로 돈과 기름을 보낸다고 한다.

 단테는 불후의 명작 신곡을 라틴어로 쓰지 않고 이곳 토스카나 방언으로 써 문학을 일반대중들에게 확산시켰다.

르네상스는 대중의 참여와 지지 없이 식자층의 계몽만으로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단테의 생가 벽면에 다소 생뚱맞게 걸려 있는 단테의 얼굴에게 나는 한 마디 말을 걸었다. "당신이 가졌던 재능을 나에게도 좀 나눠 주시오."

 베키오 리스토란테에서 스파게티로 점심을 먹고 피렌체 두오모 성당으로 걸어갔다. 두오모는 돔이란 뜻이며 주교가 있는 큰 도시마다 두오모가 하나씩 있었다.

피렌체 두오모는 지금까지 내가 본 파리의 노틀담, 밀라노의 두오모,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의 화려함과는 달리 단아하고 심플했다. 하나님은 왠지 화려한 성당보다 이런 심플한 곳에 강림할 것 같았다.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의 무대이기도 한 두오모 종탑을 바라보았다.

소설의 주인공 준세이와 아오이가 십 년만의 재회해 사랑을 나눈 두오모 종탑을 올랐다. 종소리가 울렸다. 신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우리는 미워하다 그리워하며 다시 떠나는 존재들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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