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국.jpg
▲ 정세국 ‘몽골인천희망의숲’ 조성 추진위원회 실행위원장
2007년 울란바토르에 갔을 때 반가웠던 것은 우리나라 중고차가 많이 있었고 쓰여져 있는 글씨는 한국에서의 상태 그대로 있는 것을 보는 일이었다.

더구나 우측 운전대인 일본의 자동차도 함께 섞여있는 도로 위를 보면서 러시아 철수 후 17년여가 지났어도 사회 질서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았다.

 당시 소득이 겨우 1천300달러 정도였으니까 과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넘어선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20년 이상은 걸릴 것만 같았다.

거리 곳곳에 널려진 휴지며 비닐봉지, 담배꽁초는 우리를 60년대를 돌아보도록 하였고 무질서한 도로횡단 모습과 거리 곳곳에서의 담배연기는 석탄 가스와 함께 역겨움을 동반하였다.

 첫인상이 이럴진대 그곳에서의 3박 5일 동안 울란바토르를 벗어나 2일을 보내지 않았다면 숨쉬기조차 어려웠을 터였다.

 매해 자원봉사단과 함께 갈 때마다 엄청난 속도로 변화가 되고 있음을 보곤 한다. 해마다 15%를 상회하는 GDP의 증가율 만큼이나 울란바토르가 달라지고 있다.

한글자로 덮은 채 달리던 버스와 승합차에서 한글은 모두 벗겨지고 깔끔하게 도색된 채 거리를 달리고 있고 거리에서 담배피우다 경찰에게 적발되면 엄청난 벌금을 물게 되어 있어 적어도 대로 위에서는 담배연기를 볼 수 없었던 것이 작년이었다.

인구 300만 명 중 절반 정도가 몰려 있는 울란바토르는 1923년 러시아 지배 초기에 30만 명이 살도록 계획된 도시였다. 지금 도심은 가장 교통이 혼잡한 곳으로 하루 종일 꽉 막힌 도로는 매음과 소음, 먼지로 뒤엉킨 도시였다가 점차 탈피하기 시작하고 있다.

교통경찰이 아무리 엄격한 잣대를 사용하고 있어도 아직은 시민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상태이다. 도심은 그래도 이 정도로 정리되고 있으나 조금 벗어난 지역에서는 심각한 주민의식이다. 시민의식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 보인다.

 사회주의를 거치면서 협동농장 생활로 인해 생산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게 당연시되는 그곳이 지금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도심과 시골은 차이가 있으나 시골마저 8년 사이에 임금이 5배나 올랐다.

일반적으로 저개발국가에서 나타나는 현상인 초기의 생산성 향상은 소득증가에 비례하지 않고 있다. 거품과 같은 소득을 얻고 있다는 뜻이다. ‘인천희망의 숲’에 심겨진 수목 약 10만 그루는 앞으로 주민들의 손에 의해 가꿔져야하나 지금으로서는 낙관하기가 힘들다.

 인천시민들의 혈세와 모금으로 만들어진 수목들은 주민들에게 남겨져 수십년이 지나도록 마을을 지켜주게 되리라 기대하지만 막상 주민들은 단지 ‘지금 월급여를 받고 있는 일터이고 이 일터는 계속해서 있어야 한다’라는 가치로만 인식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기대치에 비해 주민들의 생각은 차이가 있으나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아 다행이다. 이 일은 적어도 10년 이상의 기간동안 정성을 들여야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몇 년 동안 해온 것만 가지고 이러한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푸른아시아 단원을 중심으로 주민들에게 마을공동체에 대한 안내를 각종 교육을 통해 시작했다는 전언이다. 우리나라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협동의 힘을 그곳에서 쉽게 정착시킬 수 있느냐는 의문이 있으나 주민 한두 사람이 울타리를 가꾸는 일과 조림장을 자율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을 수 있다.

 마을 길을 고치고 볏짚 지붕을 양철지붕으로만 바꾸면 되었던 새마을운동의 외연만을 강조하는 일이 아니어야 한다.

그들의 삶에 대한 애착이 마을과 함께 자라나는 길을 스스로 찾아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조림지에 날아드는 해충을 어떤 방식으로 유용하게 처리할 것인가를 스스로 탐구하도록 해야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왜 먼나라 한국에서 날아와 이곳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돕도록 하는 일이다. 그런 일이 순조로워지면 울란바토르에 나가 판자촌을 이루었던 주민들이 다시 돌아오도록 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