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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월남전 당시의 성범죄에 사과하라’. 박근혜 대통령이 4번째 방미 중에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이 베트남 여성들에 대해 성폭행을 했다면서 사과를 주장하고 나섰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베트남 인권단체가 박 대통령의 방미에 맞춰 워싱턴 내셔널프레스 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에는 같은 내용이 광고로도 실렸다. 국내의 일부 언론과 일본의 산케이 신문 등이 이를 보도하면서 관심을 끌었다.

국내 언론은 놈 콜맨(Norm Coleman) 전 미국 상원의원이 그 중심에 있다고 했다. 동시에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베트남 국민들에게 사과를 하였지만 당시 야당 부총재였던 박대통령이 그 성명에 대해 비판했다는 사실도 곁들였다.

일본의 우익언론이나 단체들이 호재를 놓칠 리 없다. 이미 북한이 주장하는 미군의 성범죄와 베트남에서의 성범죄를 연재했던 일본 잡지들에게는 호기인 셈이다. 이에 맞서 한국에서는 일본의 우익과 콜맨 전 연방 상원의원의 전력이나 일본의 사주론을 캐내기에 바쁘다. 놈 콜맨이 일본의 로비스트라는 보도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무엇을 주장하는가. 베트남의 목소리라는 단체에 접속해 보았다. WSJ에 실렸다는 광고도 보았다. 피해여성으로 짐작되는 4명의 여성 사진과 함께 강간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를 하라는 주장의 광고문을 실었다.

이 단체는 ‘베트남 전쟁 기간 중의 한국군의 강간’에 대해 유엔차원의 조사를 요구하는 청원운동도 벌이고 있었다.

 급조된 기자회견에다가 일본 우익들의 위안부 문제 물 타기 전략과 연계되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전면광고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사실 베트남인들이 대통령의 방미에 맞춰 사과를 요구한 것은 미국사회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만큼 성장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틈만 나면 미국과의 혈맹을 외친다.

그러나 방미에서 F-35의 기술이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한국인들보다 베트남인들이 미국에서 우대를 받는다는 동포들의 볼멘소리도 있다.

그런데도 중국으로 기울어진 외교정책을 미국으로 급선회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따지고 보면 베트남전에 개입하게 된 것은 미국 때문이다. 사과의 근원을 따지자면 미국의 책임이 크다. 한국은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의 성격도 갖고 있다. 수많은 사상자와 고엽제 피해자도 있다. 물론 그것이 베트남인들이 주장하는 사과요구가 모두 틀렸다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논거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베트남전에서 한국군과 정부는 무엇을 했으며, 그것이 양국의 장래를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외국에는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의 재벌들이 어떻게 자본축적을 했던가를 연구한 책도 있다.

그런데도 한국에는 베트남 전쟁에서 자신의 목숨 값으로 가족 생계와 경제적 토대를 마련한 원시적 자본축척에 대해서는 연구가 거의 없다. 이제라도 베트남전쟁에 참여했던 그 시대 젊은이들의 삶과 라이 따이한에 이르기까지 각종 현안들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OECD 가입국에 수출 10위 국가임을 자랑만 할 때가 아니다. 그에 걸 맞는 국제적 인식과 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 반인륜적 범죄가 있었다면 사죄하고, 책임자가 있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금도 나치를 단죄하는 독일을 본받아야 한다.

위안부 문제와 전쟁책임을 회피하는 일본의 과오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은 외국에 대해 국가를 대표한다. 동시에 국군의 통수권자이다. 군대의 과오를 제대로 가릴 때에 국가가 올바로 작동한다.

방산비리를 보면서, F-35 기술이전 문제를 보면서 분노하는 국민들이 많다. 썩은 군대로 무슨 통일을 꿈꾸고 있느냐는 원로의 질타에도 백 번 공감한다. 군의 부패의 뿌리가 베트남전의 과오를 제대로 따지지 않은데 원인이 있다는 주장에도 솔깃해진다.

 우리들 주위를 돌아보자.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등 만만한 국가가 없다. 이미 베트남은 아시아의 주역이다.

 어려울 때 의지할 이웃이 없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다. 전쟁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한 일이 있다면 깔끔하게 사과하고, 책임을 지는 모습이 더 존경받는다. 자성하지 않는 세계관이나 책임지지 않는 역사 인식으로는 세계의 리더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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