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시인은 이 가을을 어떻게 표현할까?

 레미 드 구르몽의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는 시 구절로 유명한 ‘낙엽’이 이 시기에는 가장 적합할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유난히 가을을 타는 문학소녀들이 깔깔거리며 시집 사이에 낙엽을 곱게 끼어 넣을 것 같은 감상도 떠오른다.

 깊어가는 이 가을에 두 시인이 만났다. 한 이는 넥타이 없이 검정색 캐주얼 정장으로 멋을 냈고, 다른 이는 남색 양복으로 맵시를 뽐냈다.

 옷매무새에서 알 수 있듯 두 사람 모두 한 조직을 대표하는 CEO라는 호칭보다 문인 또는 예술가로 자신을 불러주길 바란다.

 그 중에서도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백미를 한껏 만끽할 수 있는 시인이라는 자긍심이 강하다.

 ‘2015 세계책의수도 인천’ 지정을 기념해 기호일보사와 인천문화재단이 협력 사업으로 진행하는 ‘인천시민과 명사가 함께하는 애장 도서전’ 스무 번째 명사로, 애장도서전을 이끌고 있는 인천문화재단과 기호일보 대표를 초대했다. 김윤식(68) 대표이사와 한창원(56) 사장이 주인공이다.

어을(魚乙)을 호로 쓰는 김 대표는 시인으로 인천 문학계의 큰 어른이고, 한 사장 역시 시를 벗 삼아 사계절을 보내는 등단 시인이다. 그들의 책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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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닮은 듯 다른 인천토박이, 시(詩)를 가슴에 품다.

 김 대표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으며, 한 사장은 인천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세 살 때 인천에 정착한 후 53년을 인천에 거주했으니 인천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니 인천사람이다.

 김 대표는 남구 숭의동에서 태어나 인천중과 제물포고,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후부터 줄곧 인천에서 활동했다.

그의 인생역정을 따라가 보면 겉으로는 정식 엘리트 코스를 밟은 뻣뻣한 문인으로 비칠 수 있지만 자유를 사랑하는 영혼만큼은 언제나 맑고 티 없다.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지켜온 그의 소신만은 그 누구도 꺾을 이가 없었다.

 인천문인협회장을 거쳐 현재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인천의 문화예술을 지켜내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가라 불리는 김 대표는 세상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향유하는 낭만파 시인이다.

 그렇다고 오로지 시만 사랑하는 외골수도 아니다. 인천의 역사유적을 아끼는 향토사학자이자 인천의 문화예술을 걱정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가 처음 책의 매력에 빠진 건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도서관이 문을 열면서다. 매일같이 도서관을 갔고, 하루에 1권 이상을 읽을 때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또 다른 주인공인 한 사장은 지역사회에서 로맨티스트로 정평이 나 있다. 결혼식 주례나 의미 있는 축사를 할 때가 많은데, 잊지 않고 직접 쓴 시(詩)를 헌사한다. 특히 그의 시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는데, 가난에 맞서 치열한 삶을 살아야 했던 어머니의 땀 냄새는 언제나 그에게 가슴 떨리는 향기로 배어 있다.

 최근작 ‘협궤열차가 지고 간 하루’는 철모르던 유년 시절, 가슴을 휘저은 가난에 대한 단상과 홀로 삶을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작품 곳곳에 어머니와의 추억이 깃든 곳이자 어린 시절 놀이터였던 송도와 문학산 자락이 자주 등장한다.

 ‘강’이라는 시를 발표하며 글쓰기를 시작했고, 대표작에는 ‘협궤열차가 지고 간 하루’ 등이 있다.

  # 남이 볼까 숨겨둔 ‘숨은 보석’과 동경해 온 ‘숲속 오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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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근대문학관에서 마주한 두 사람은 신줏단지를 모시듯 손에 책 한 권씩을 꼭 움켜쥐었다.

 김 대표가 소중히 품에서 꺼낸 책은 한눈에 봐도 오래되고 귀한 책이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11월에 펴낸 책은 딱히 제목도 없고, 당시 한창 활동하던 현역작가 30인의 단편집을 엮었다.

 황갈색 표지에 박과 꽃, 곤충을 그려 넣어 발랄한 인상을 풍기지만 재질이 썩 좋지 않은 탓인지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낡고 군데군데 찢긴 흔적도 보인다. 청춘사라는 출판사에서 펴냈고, 염상섭·전영택·이무영·최요한·김동리 등 당대 내로라하는 문인의 작품이 실렸다.

 행여 종잇장을 펼치다 해지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 조심조심 책을 넘기던 김 대표는 추억에 잠긴 듯 책과 인연을 쌓았던 청년시절을 떠올렸다.

 "1970년 중반쯤 됐을 거예요. 대학 졸업하고 인천에 와서 지내고 있는데, 인천교대에 강의를 나가던 선배가 찾아왔죠. 둘이 뭘 할까 하다가 지금 배다리 헌책방 골목을 구경 갔어요. 여기 저길 보는데 책 뭉텅이 속에 겉 표지가 신기한 게 있는 거예요. ‘심봤다’ 했죠. 근데 그땐 가난해서 책을 바로 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했는 줄 아세요? 남이 못 보게 저 책을 다른 책들 사이 안쪽 깊숙한 곳에 숨겨놨죠. 며칠 뒤 돈을 구해가서 책을 결국 손에 넣었어요. 어찌나 기쁘던지. 마치 귀한 보석을 저만 알고 있는 곳에 몰래 숨겨뒀다 찾은 기분이었죠."

 그렇게 운명처럼 김 대표의 품에 들어온 단편집은 겉 표지는 촌스럽지만 앞선 세대 선배 작가들의 땀과 열정이 담긴 소중한 보석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는 이 단편집을 세월의 풍파를 견뎌내며 자신과 함께 해준 ‘든든한 놈’이라고 했다.

 한창원 사장의 책 사연도 들어보자.

 소중한 책일수록 책장 가운데에 꽂아두고 생각날 때마다 여러 번 읽는다는 한 사장은 자신의 애장 도서로 법정스님의 ‘오두막편지’를 추천했다.

 이 책은 무소유의 진리를 몸소 실천하는 법정의 강원도 산골 오두막 생활을 편지글로 엮었다.

 일상에 찌든 현대인들이 어디를 향해 가야할지를 일깨워주는 위안을 선물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사장은 이 책에 대해 ‘가까운 미래의 꿈’이라고 정의했다.

 "법정 스님의 글을 너무 좋아하는데, 이분이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글로 쓰신 거예요. 책을 접하는 순간 짜릿한 교감이 느껴졌어요. 제 꿈이 아무도 없는 한적한 시골 산자락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거든요. 스님이 오두막에서 소일도 하고, 나물도 캐고 밥 드시고 하는 모든 소소한 일들이 제 이야기처럼 들렸어요. ‘나도 언젠가 반드시 나만을 위해 떠나리라’하는 게 제 마음의 울림이죠."

 한 사장은 책을 읽어 내려가며 우리 사회의 참된 어른은 누구이고, 자연이 주는 원대한 힘은 또 얼마나 위대한가를 몸소 느꼈다고 한다.

 또 소박하고 간소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법정의 모습을 머리로 떠올리며 자신이 안고 있는 상처가 치유되는 감흥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 ‘자유로운 영혼’과 ‘무소유’

 김 대표는 자타공인 인천 문인계의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만큼 세상 규칙과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창조적인 생각을 중시한다.

 그가 인천문화재단을 이끌며 이뤄내고 싶은 것 또한 장황한 것이 아니다. 인천의 문화예술인을 돕고, 인천시민이 예술을 사랑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여기에 하나 보태면 지역의 풀뿌리 문화예술이 자생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게 꿈이다.

 그러기에 김 대표는 인천의 문화예술이 발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연구와 정책을 제시하는 역할에 힘을 쏟고 있다. 그 일은 인천개항장 역사와 동인천 원도심, 송도국제도시, 168개 섬 등 인천만이 가진 독특한 가치와 정체성을 제대로 찾아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게 김 대표의 소신이다.

 이것은 김 대표가 올해 창립 10년을 맞은 인천문화재단을 이끄는 중요한 가치이기도 하다.

 "문화예술가가 마음 편히 창작을 할 수 있는 인천, 300만 인천시민이 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문화재단의 미래이자 ‘자유로운 영혼’을 지켜내는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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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한 사장 역시 책을 통해 얻은 인생의 가치와 교훈을 현재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다양한 분야에 녹여내고 있다.

 청년시절부터 우직하게 지켜 온 사회 환원과 봉사활동에 더 힘을 보태고, 현재 본업인 지역 언론 대표로서의 역할에도 성심을 다하고 있다. 여기에 자신을 믿고 십시일반 뜻과 정성을 모아준 인천사회복지협의회와 탁구협회 등에도 언제나 아낌없는 배려와 사랑을 건네고 있다.

 "오두막에서 목청 높여 기지개를 켜며 아침을 맞고, 내리는 빗물에 몸을 적시며 낙엽 길을 밟아보는 게 꿈이지만 지친 일상 속에서도 거뜬히 법정 스님의 ‘오두막살이’를 이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이들과 그리고 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 앞으로도 ‘무소유’의 가치를 몸소 실천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대담=한동식 정치부장 dshan@kihoilbo.co.kr

  정리=이재훈 기자 ljh@kihoilbo.co.kr

  사진=홍승훈 프리랜서

 #한창원 사장 프로필

 1959년 경북 달성 출생.

 인천 송도초교-인천대 경영학과 졸업

 현 인천시 사회복지협의회장

 현 인천시 탁구협회장

 현 전국지방신문협의회 부회장

 현 아동복지시설 향진원 후원회장

 현 기호일보 사장

 2010년 사회봉사부문 대통령상 수상

 대표 저서 「강」,「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에게」「홀로 사는 이 세상에」「협궤열차가 지고 간 하루」

#김윤식 대표 프로필

 1947년 인천 출생

 인천중-제물포고-연세대 국문과 졸업

 1987년 현대문학 등단

 전 한국문인협회 인천시지회장

 현 인천시 시사편찬위원회 위원

 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대표 저서 「고래를 기다리며」,「청어의 저녁」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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