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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국성 변호사/기호일보 독자위원회 위원장
1986년으로 기억된다. 너무 오래된 추억이라 사실관계가 정확한지는 본인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이 지났다.

당시 26살의 나이로 판사 실습을 하기 위해 모 지방법원으로 배속돼 어느 부장판사실에서 판사 실무 수습을 하게 됐다. 늘 법원이라는 직장 안에서만 움직이게 되니 만나는 사람들도 매우 한정되고 늘 판결문을 작성하기 위해 사건 기록을 읽어 가면서 메모하는 것이 거의 주된 하루 일과였다.

 판사시보라는 혹은 연수생 시보라는 명칭이 따라 붙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거리를 뒀고 나이 많은 분들은 영감님이라는 호칭까지 붙이곤 했다.

처음에는 이 호칭이 매우 거슬렸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냥 들어 줄 만하다고 느끼게 되고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됐다. 같은 구내에서 늘 만나던 선배 판사들이 신사적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하거나 일반인들을 만나면 사용하는 언어의 느낌이 무언지 모르게 이상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높여 주는 어투가 아니라 대화 문장의 끝부분만을 높여서 마지 못해 상대방을 인정해 주려는 느낌이었다.

판사 실무 수습을 마치고 지방의 모 검찰청의 마약부에 배속돼 주임검사 실무 수습을 하게 됐다. 느낌은 정말 대단했다. 법학을 공부하면서 그렇게 엄격한 규율을 받아 본 것이 진짜로 처음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검찰의 국민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당시에는 철제 의자를 검사나 수사관 앞에 놓고 신문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처음에는 언어를 높여 사용하면서 조사를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거의 반말로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당시에는 그게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고 모두가 문제의식 없이 넘어간 것으로 기억된다. 10개월의 판사, 검사 실무 수습을 마치고 다시 사법연수원으로 복귀했다. 조용한 사법연수원 기숙사에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참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그 무게감은 개인이 혼자서는 해결할 수 있는 법조 문화가 아니라는 것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후 정권이 바뀌면서 법조 환경도 숨막힐 정도로 빠르게 변했다. 어느 때부터인지 모르지만 법정 바로 앞에 법정 안에서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재판장의 언행, 태도 등에 대한 평가를 물어보는 법원의 평가질의서까지 등장했다.

재판업무를 담당하는 판사라는 직책은 헌법기관으로서 최고의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자리인데, 재판을 받고 나오자마자 평가를 해 달라는 질의서를 법정 밖에 설치한 법원의 행위는 너무나 변한 법원의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다. 흔히 권력은 있으나 존경을 받지 못하면 폭력이 되고, 권력이 있는데 존경까지 받으면 진실한 권위라고 한다.

 대한변호사 협회에서 검사에 대한 평가 제도를 수행한다고 해서 그 정당성 혹은 공정성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현재 검찰은 법원이 자체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국민으로부터의 평가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수사의 기밀성이라는 이유가 평가 제도를 시행하지 않는 이유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최근 국가적으로 큰 문제가 된 방산업체의 무기 관련 온갖 부정과 비리는 업무의 기밀성, 중대성이라는 명분으로 국민의 감독을 제대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임은 상식적인 진단이기 때문이다.

검찰에서 국민에 의한 평가를 받는 제도를 시행하면서 수사문화와 관행을 국민편익 증진 쪽으로 개선해 왔다면 굳이 변호사 단체에서 검사를 평가한다는 주장을 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직업이 변호사이기 때문에 수많은 일로 많은 경찰서와 검찰을 방문하고 있다.

 대부분의 수사관들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친절하고 배려 깊으며 언어 사용도 공손해 그 인간적인 따뜻함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수사문화가 변화된 것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일부 수사관들은 아직도 사회에서 상대방을 비하할 때 사용하는 당신이라는 호칭을 초면부터 사용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한다.

심지어 똑바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각오하라는 식의 위협도 들리곤 한다. 차제에 검사의 평가 문제에 대한 국민적 논의를 시작해 볼 시기라고 생각한다.

 검사와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변호사들이 검사를 평가하는 것보다도 더 다양하고 광범위한 국민의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는 수준이라면 대환영이다.

 언제, 어느 장소를 가더라도 인격적으로 존경을 받고 고생하는 만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 진정한 평가제도이다. 더불어 진정한 평가는 스스로에 의한 자기 성찰과 양심에 기한 변화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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