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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현린 논설실장

떠나고(離) 흩어진다(散)는 ‘이산(離散)’의 아픔에 관한 이야기는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편에 보인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저들 적국에서는 백성의 시간을 빼앗아 백성들로 하여금 농사를 못 짓게 하여 그 부모를 공양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부모는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父母凍餓), 형제처자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兄弟妻子離散)"라는 말이 그것이다.

 이렇듯 ‘이산’은 사전적 풀이인 ‘가족이나 단체의 구성원이 헤어져 흩어짐’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전쟁에서 비롯된 헤어짐의 상흔(傷痕)이다. 전쟁으로 인한 이별은 애간장이 끊기고 타는 아픔을 남긴다. ‘단장(斷腸)의 아픔’ 이라는 말이 있다. 너무나 슬퍼서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이 ‘단장’에 관한 슬픈 유래가 있다. 중국 동진(東晉)시대 대장군 환온(桓溫)이 촉(蜀) 정벌에 나섰다. 배를 이용해 군사를 나눠 싣고 양자강 중류의 절벽이 많은 협곡 삼협(三峽)을 통과할 때 병사 하나가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붙잡아서 배에 실었다. 새끼 원숭이가 잡혀가자 어미 원숭이가 뒤따라왔으나 배에 오르지 못하고 강가에서 슬피 울부짖었다. 애절한 어미 원숭이의 울음소리는 계속되었다. 배가 강폭이 좁아지는 곳에 이르러 강기슭에 배를 대자 어미 원숭이는 바로 배에 뛰어올랐다. 그러나 어미원숭이는 피를 토하고 그대로 죽고 말았다. 병사가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너무나 애통한 나머지 창자가 토막토막 모두 끊어져 있었다. 이후 ‘단장’은 생이별의 아픔을 표현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더 이상 이산가족들을 아프게 하지 말아야 하겠다. 우리는 이산의 아픔을 언제까지 드라마 아닌 드라마로 보아야 하는가. 며칠 전, 온 국민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고추 팔아 ‘꽃신’을 사주겠다고 약속하고 헤어졌던 딸에게 65년 만에 약속을 지킨 한 노구의 아버지, 납북 어부가 43년 만에 그리던 어머니를 만났지만 불과 12시간 상봉 후 헤어지는 장면에서 차마 늙으신 어머니를 바라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린 채 눈물을 삼키는 64세 초로의 아들 모습 등등. 국민들은 아무리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드라마가 연출돼도 이제는 흘릴 눈물마저 말라 버린 지 오래다.

 지난달 27일자를 끝으로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 언론에서는 남북이산 가족 문제를 다루는 기사는 사라졌다. 또다시 언제 남북 간에 이산가족 상봉 문제가 거론돼 얼마 남지 않은 이산가족들의 만남이 이뤄질 수 있을지 모른다.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했다. 이산가족들의 나이가 자꾸만 고령화되고 있다. 일에는 지금 당장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고 다소 늦춰도 괜찮은 것이 있다. 때를 놓치고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짧은 만남, 긴 이별’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나. 기약 없는 만남과 이별만이 반복 상영되는 이상한 한반도 드라마다. 만나니 반갑다 했다. 하지만 곧 헤어질 것을 생각하니 슬프다 했다. 혈육이 잡은 손을 버스 차창이 갈라놓을 때까지 그저 바라만 봐야 했던 국민들이다.

 이제 헤어지면 또 언제 다시 만날까 하는 기약 없는 이별에 눈물을 흘리곤 하는 우리 이산가족들이다.

 상봉 가족들에게 한바탕 꿈이었을 것이다. 만남 후 또다시 생이별의 아픔을 되새겨야 하니 만남 또한 고통이다.

 지난달 22일 제2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여한 1차 상봉단이 마지막 상봉 일정을 끝낸데 이어 26일 2차 상봉단도 상봉 일정을 모두 끝냈다. 1주일이 지났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언론에서도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산의 아픔도 잊혀져가고 있지는 않나 하는 점이다.

 아마도 우리 남북 이산가족을 제외하고는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지 않고 헤어지는 가족들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게다. 지난 10월 3일이 통독(統獨) 25주년이었다. 독일의 통일도 보지 못했는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목도(目睹) 하지 못했는가. 참으로 못난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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