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11월 3일 전남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항일운동. 발단은 통근열차에서의 일본인 학생들과 조선인 학생들의 충돌사건이었다.

10월 30일 광주를 떠난 통근열차가 나주에 도착했을 때, 일본인 남학생이 광주여고보 3년생 박기옥 등 조선인 여학생들을 괴롭히는 것을 보다 못한 박기옥의 사촌 박준채 등이 일본인 학생들과 싸움을 벌인 것이다.

11월 3일, 광주중학의 일본인 학생과 광주고보의 조선인 학생간에 대규모 충돌이 일어났다. 11월 12일, 광주의 학생들은 일제히 시위에 돌입했다.

그때 뿌려진 격문의 주요내용은 <교우회 자치권의 획득, 언론·출판·집회·결사·시위의 자유 획득, 조선인 본위의 교육제도 확립, 식민지 노예교육제도 철폐, 사회과학 연구의 자유 획득> 등이다.

학생들은 학생투쟁본부를 설치하고 신간회·근우회 등 주요단체들과 연계를 맺으며 광주의 투쟁을 전국적인 항일운동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의 항일 투쟁정신을 본받기 위해 53년부터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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