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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문화는 인간의 생활 양식이다. 이성을 바탕으로 손으로 실현되는 문화는 인간을 동물과 차원이 다른 존재로 살아가게 하는데 결정적인 조건이 된다. 이 생활 양식으로서의 문화는 주지하다시피 지역과 국가에 따라 독특한 양상을 띤다.

 문화는 기존의 문화를 토대로 재창조와 재가공을 거듭하면서 진화한다. 더불어 오랜 전통과 의미 있는 역사를 통해서 그 수준을 높이고 깊이를 더해 간다.

 지역문화 역시 해당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발판으로 지역민들의 애환과 삶의 흔적들을 바탕으로 형성되고 유지된다. 국가가 나서서 역사적으로 가치있는 장소를 함부로 고치거나 변조하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규제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유럽에서는 여전히 사람이 거주하는 수백 년 된 건물들이 존재한다. 역사와 전통은 시간과 삶의 발자취로 만들어진다.

 예컨대 아무리 크고 세련되고 편리하게 지어졌더라도 시간의 때가 묻지 않고는 역사적 건축물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통과 인습을 구분하지 못하듯이 역사와 낡은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한 문화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불어 역사를 낡은 것으로 오해하고 발전의 장애가 된다고 간주하는 한 보다 나은 문화를 창출하기란 요원하다. 관광을 목적으로 외국에 나가는 것은 그 국가의 가장 독특하고 고유한 문화를 체험하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로 외국 관광객이 우리나라를 찾는 것은 가장 한국적인 것을 보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볼거리를 찾아 인천을 찾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가장 인천적인 모습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에서 역사적으로 보존하고 계승해 온 문화적 유산은 이제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도시 정비와 생활 환경 개선이라는 미명 하에 마구잡이로 역사의 숨결을 없애고 전통의 자취를 지워온 대표적인 도시가 바로 인천이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이러한 행태는 별로 바뀌지 않고 있다. 인천을 대표하던 체육관은 하루 아침에 없애고 새로 지은 체육관의 웅장한 규모에 가슴 벅차하는 곳이 인천이다. 도원체육관이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결국 장충체육관은 살았지만 선인체육관은 그렇지 못했다. 이 건물이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인천에 대해서 갖는 상징적인 의미는 작지 않다. 허물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백 번 이해하더라고 인천은 경제적 가치에 의해 역사적 가치가 너무나도 쉽게 훼손되는 도시다.

지역 문화는 애향심과 자부심을 토대로 역사와 전통에 의지하여 변화와 발전을 거듭한다. 이제 인천을 이해하고 숨어 있는 인천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단서를 가진 곳은 중구밖에 없다. 개항은 인천의 정체성을 가늠하고 규정할 수 있는 인천 고유의 역사적 근거가 됐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구는 개항의 역사를 복원하고 인천의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못하다. 문화 예술 교육의 불모지인 중구에 그나마 하나 있는 대중문화 시설인 미추홀문화회관의 운영이 위기를 맞이한 것도 중구의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의 저급성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다. 격려를 받아도 모자라는 곳이 해당 관청의 억지와 압박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번 사태를 미추홀문화회관과 중구보건소 간의 단순한 이권 문제로 보기에는 사안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구민에 대한 보건의료 혜택의 중요성과는 별개로 중구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에 대한 공무원들의 인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라진 역사를 회복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아있는 것을 지키고 파괴를 막는 것은 더 시급하다. 중구를 그저 쇠락하고 초라한 인천의 변두리 정도로 치부하기에는 중구의 역사적 무게와 문화적 위상은 결코 가볍지 않다. 중구는 인천정신의 어머니이며 동인천과 신포동은 인천문화의 고향이다.

 역사와 전통 없이 단기간에 급조되거나 화려하게 포장된 문화는 공허할 뿐이다. 개발이라는 명목에서 잠시 비켜선 채 그나마 과거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중구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고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인천문화가 한국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가장 최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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