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jpg
▲ 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2015년 10월 15일, 인천 시민의 날에 문학산 정상이 개방됐다. 아마도 2015년 최대의 경사이자 뉴스거리일 듯하다. 60대 중반의 선배들은 이구동성으로 이곳을 놀이 공간으로 삼았던 지난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되돌아 보면 일제 강점기에서의 문학산은 민족 정기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방기한 상태에 있었고 이어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더욱 퇴락해 가고 있었다.

그나마 1958년 허물어진 동문을 복원해 ‘문학산성 동문(東門)’이라 새겨 넣었고, 산성으로 오르는 길목에 ‘십제고도문학산성(十濟古都文鶴山城)’이라는 표석을 세우면서 그 의미를 되새겼다.

 그러나 문학산의 전략적 가치가 높았던 것에 기인했으리라 보이지만, 1962년 미군기지가 들어섰고 1979년 미군의 자리를 한국군이 이어 받게 되면서 정상을 포함한 일부 지역이 시민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게 됐다.

그 후 1986년 문학산성은 인천시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됐지만, 인천 역사와 문화의 상징적 지역인 문학산 정상이 인천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문학산은 해발고도 217m로 남구의 문학동·관교동·학익동과 연수구의 선학동·연수동·청학동·옥련동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인천 사람들은 예부터 문학산을 ‘배꼽산’이라 불러 왔는데, 산봉우리의 봉화대(烽火臺)가 흡사 사람이 배꼽을 내놓고 누워 있는 형국으로 보였기 때문이라 설명하고 있다.

 17세기까지의 문학산은 ‘그저’ 남산(南山)이나 성산(城山)으로 표기됐는데, 남산(南山)과 같은 방위명(方位名)과 성산(城山)과 같은 기능명(機能名)은 이 지역 ‘고유’의 산명이라기보다는 도읍지나 각 고을 뒤에 있는 큰 산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편의적 명칭이었다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문학산 정상에 올라보니 양쪽을 휘돌아 감싸 안은 산세가 영락없이 학(鶴)이 날개를 펼친 모습이다. 이곳에 살던 옛 인천의 선조들은 그 오랜 시절부터 산이 생긴 모양 그대로 학산(鶴山)으로 불렀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후일 인천 지역 유일한 서원인 인천서원이 ‘학산(鶴山)’이라는 사액(賜額)을 받게 되었을 때의 ‘학산’은 바로 지역의 오랜 산명(山名)을 바탕으로 생겨난 이름이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에 충분했다. 인천향교의 공자를 받드는 문묘(文廟)의 ‘문’과 십장생의 ‘학’을 딴 문학산 정식 명칭의 탄생은 명실상부 인천의 중심되는 산으로서 그만큼 인천의 위상이 달라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광복 후 인천시립박물관장이었던 이경성은 1949년 「인천고적보고서」를 작성했다. "문학산은 서해를 굽어보는 명산으로, 외성은 석축의 성벽으로 주위 약 200m, 내성은 토축의 성벽으로 주위 약 100m로 돼 있다. 자연의 험지를 이용하여 문학산 정상의 성벽은 평균 5m 이상의 높이를 가지고 있으며, 높은 표고(標高)에도 불구하고 우물이 있다"고 밝혔다.

 또 "문학산성의 현황은 다른 산성과 같이 자연 방치한 연고로 성곽의 북면 남면 서면 등 대부분은 붕괴돼 그 석조물이 연이어 산록(山麓)에까지 덮고 있다.

완전한 상태로 있는 것은 다만 동북면 일부의 석축 성벽뿐이다. 산성 연구의 현 단계에 있어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장차 문학산성은 고적으로 지정해 길이 보존할 객관적 가치를 다분히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 곧 베일에 싸였던 그 동쪽 문의 실체도 드러나려 한다. 60여 년 전 이경성 박물관장의 아쉬움은, 18세기 이래 지역의 선조들이 ‘때’를 기다려 온 것과 같은 맥락으로 실천에 옮겨질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와 인천 정명(定名) 600년과 비류 건국 2030년, 인천개항 130년 등 굵직한 행사가 이어져 왔다.

 그리고 이제 2천 년 비류 백제의 건국 설화가 담겨져 있는 문학산 정상 개방이 이루어졌다. 분명한 것은 인천의 재발견이 곧 가치 재창조의 원동력이다. 오랜 시간을 인고해 온 만큼 개방에 따른 보존과 복원 그리고 시민과 함께하는 문학산이 되기 위한 여러 방안들이 다양하게 제시돼야 함은 물론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