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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걸어온 길은 끊임없는 변화에 도전하고 적응하며 살아온 일련의 세월들이다. 그 변화의 물결 속에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점진적으로 변화돼 적응된 것이 있는가 하면, 급작스러운 이동으로 혼란과 부적응의 시기도 있어 왔다.

익숙한 것에 대한 친숙함과 편안함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감성이다. 그리고 급작스러운 변화가 닥쳤을 때, 새로운 도전의 불확실성 앞에서 이를 선뜻 받아들이기보다는 일면 거부하고 부정하는 모습 또한 자연스러운 본능이라 하겠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영화사 초기 역사적인 변화를 소재로 삼고 있는 작품이다. 1927년 워너브라더스사에서 필름에 사운드를 입힌 최초의 유성영화를 선보인 이래 영화의 흐름은 소리 없이 이미지의 힘으로 진행되던 무성영화에서 사운드라는 최첨단 기술을 탑재한 유성영화 시대로 빠르게 이행됐다.

 영화 ‘아티스트’는 1920∼30년대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영화역사의 새로운 페이지가 작성되던 유성영화 초기 시절을 그 무대로 삼고 있다.

 만인의 연인이자 당대 최고의 인기 배우 조지 발렌타인은 무성영화 시대의 아이콘 그 자체였다. 흐트러짐 없이 올백으로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에 멋스러운 콧수염을 기른, 신사적이며 유쾌한 매력이 넘치는 그는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영화제작 기술은 빠른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조지 발렌타인은 아직도 관객에게 보여 줄 많은 매력이 있었지만, 시대는 과거의 영웅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갑자기 튀어나왔다고 느껴질 만큼 유성영화 기술은 그렇게 성큼 다가와 있었다.

 조지 발렌타인은 소리로 가득 찬 시끄럽고 경박한 영화를 관객이 외면할 거라 확신하며 무성영화에 대한 깊은 믿음과 확신을 주장했지만, 세상은 그 낯선 변화에 오히려 열광하고 있었다.

사비를 들여 제작, 감독, 배우까지 도맡아 개봉한 무성영화는 참패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조지 발렌타인의 인생 또한 파산신청을 하기에 이른다.

 과거에 누렸던 찬란한 영광은 모두 전당포에 저당 잡힌 채 그는 술과 자괴감으로 하루하루를 채워 갔다. 그러나 그에게도 한 줄기 빛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페피라는 후배 여배우의 존재였다.

페피가 단역배우로 전전긍긍하던 시절, 조지는 그녀에게 자신만의 매력을 어필할 것을 따뜻하게 조언해 줬다. 변화에 적응하며 자신만의 개성적인 매력을 선보인 그녀는 바뀐 새 시대의 주인공이 돼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고 좋아했던 한 시대의 아이콘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 때, 그녀는 외면하지 않고 그의 재기를 격려하고 적극 응원해 줬다. 3∼4년 사이에 화려한 스타에서 퇴물이 된 조지 발렌타인. 잊혀진 스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영화 ‘아티스트’는 2012년 개봉과 함께 많은 평론가와 관객에게서 뜨거운 호응을 얻어낸 작품이다. 디지털 시대에 재창조된 아날로그 제작 방식과 그 감성의 재현은 힘들고 지친 우리 삶을 긍정하고 회복하게 하는 묘한 에너지를 건네고 있다.

 와이드스크린의 넓은 화면비율과 화려한 볼거리로 가득 채워진 요즘 영화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이 작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뻔한 이야기, 새로울 것 없는 화면 구성 방식과 익숙한 연기 스타일 등 신기하고 놀랄 만한 장치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지극히 통속적인 모습으로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그러나 이 통속성은 오히려 순진하고 순수하게 영화의 본래적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영화를 사랑하는 까닭은 기술 발전에 따른 화려한 외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로 전달되는 영화적인 이야기의 힘과 그 안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삶의 가치에 있다고 말이다.

 영화 ‘아티스트’가 전하는 단순하고도 순진한 메시지는 빠른 변화의 시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소박한 위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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