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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하기 칼럼니스트/작가
버스를 타고 오스트리아에서 독일로 넘어갔다.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산악지방을 벗어나니 끝없는 구릉과 벌판과 숲이 이어졌다. 독일 사람들은 예로부터 숲을 신성시해 산림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이 아름다운 독일 숲에서 헨젤과 그레텔, 브레멘 음악대의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로부터 숲을 신성시했다. 우리는 신단수 숲에서 단군신화가 나왔고 계림의 숲에서 김알지가 나왔다. 최근에는 유아교육 과정에 숲 산책이라는 자유선택 시간이 있어 어릴 때부터 숲에서 뭇 생명들과 만나 놀면서 감수성을 발달시킨다.

 버스는 숲속으로 끊임없이 달려 마침내 우리 일정의 마지막 도시인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했다. 로마에 도착하기 전에는 버스 안 비디오로 ‘로마의 휴일’을 보고 워밍업을 했다면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하기 전에는 ‘황태자의 첫사랑’을 보며 도시의 분위기를 느꼈다.

영화의 내용은 궁정에서 웃음을 잃고 늘 우울하게 살던 황태자가 자유분방한 하이델베르크대학에 유학 와서 순수한 여인 케티와 사랑을 엮어가며 인생의 기쁨을 맛본다는 스토리이다.

그런데 겨울이라서 그런지 막상 도착한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는 태양빛이 모자라는 다소 음울한 도시로 느껴졌다.

하지만 독일 사람들은 추위에도 불구하고 햇빛을 한 오라기라도 더 쬐려고 레스토랑 밖 야외에서 엷은 옷을 입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햇빛을 쬐지 않으면 몸에 곰팡이가 난다고 한다.

 멀리 산에는 하이델베르크 고성이 보이고 하우프트 광장 옆 하이델베르크 성당은 개신교 교회로 바뀌었다. 유럽에서 처음 교회를 발견한 우리 부부는 의자에 앉아 조용히 기도한 뒤 교회 내부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성화와 조각으로 꾸며진 옛 성당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교회였다. 이렇게 훌륭한 성당이 재정난으로 문을 닫았다니 유럽정신의 노쇠를 보는 듯했다. 그나마 교회가 되었으니 다행이다. 유럽 성당과 교회가 술집이나 카페로 바뀌는 게 부지기수라고 한다.

 우리는 네카어강을 가로지르는 카를테오도르 다리로 갔다. 이 다리에서 보는 하이델베르크 풍경은 아름답고 고풍스러웠다.

하이델베르크대학 건물과 로마와 중세시대 세워진 고건축들이 아름답게 강변 좌우로 늘어서 있고, 벽돌로 된 로만 가도가 강변을 따라 흐르고 있다. 슈퍼모델 클라우디아 시퍼 같은 유명인들의 별장이 이 강변 마을에 있다고 한다. 다리 입구에는 유명한 명물이 있다.

엉덩이가 빵빵하고 고환이 덜렁거리는 발정난 원숭이 동상이다. 이 원숭이의 텅 빈 두개골에 머리를 집어넣으면 머리가 좋아지고 시험을 잘 본다고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인간이 아닌 원숭이 머리에, 그것도 발정난 원숭이 두개골에 머리를 집어넣으면 오히려 머리가 더 이상해질 것 같은데도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큰 지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머리를 집어넣고 사진을 찍는다. 올해 수능을 보는 아들을 대신해서 우리 부부도 원숭이 두개골에 머리를 집어넣으며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 출국 공항인 프랑크푸르트로 갔다. 외국에 가면 그 나라가 얼마나 선진화되었는지는 입출국 심사 시간을 보면 알 수 있다. 후진국일수록 컴퓨터가 느리고 행정이 느리고 확인 절차가 복잡하다.

 그런데 마지막 관문인 독일의 프랑크푸르트공항의 출국 심사는 관광객의 인내력을 테스트했다. 내가 선 줄의 독일 심사관은 동양인의 얼굴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지 멍하게 한 번 쳐다보고는 컴퓨터를 세월아 네월아 들여다보고, 또 한 번 얼굴을 멍하게 쳐다보고 하염없이 컴퓨터를 들여다 보았다.

 이렇게 세 번씩을 쳐다보고도 뭐가 부족한지 한참 동안 먼 산을 보며 사색한 뒤 겨우 통과시켰다. 인천공항이 왜 세계 제일의 공항인지 이번 유럽여행에서 절실히 느꼈다.

 유럽에서 기대 이상으로 삶을 재충전하고 돌아왔다. 여행이란 일상의 반복을 떠나 잠시나마 ‘다른 조건’ 아래에서 살아보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늘어졌던 나의 생각과 느낌에도 탄력이 생겨나는 것이다. 괴테, 헤밍웨이, 황석영. 왜 훌륭한 작가들이 세계를 다니면서 글을 썼던가. 여행을 하지 않은 작가는 경험도 상상력도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상상력의 외연을 넓히는 계기로서의 이번 유럽여행은 성공적이었다. 이제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으니 오크 포도주 통처럼 제 자리 앉아 글을 써서 최고급 와인으로 숙성시키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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