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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찬근 인천대 교수
유엔 시스템의 방대한 조직 운영을 위해 일본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예산을 지원하는 나라이지만, 자국 내에는 동경 시부야에 유엔대학을 설립한 것 외에 이렇다 할 유엔 산하 조직을 유치하지 못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개도국 기후문제의 금융적 해결을 위임받은 녹색기후기금(GCF)의 사무국을 송도국제도시에 유치했다. 이렇게 소중한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잘 대응해야 한다. 그 방향성은 GCF를 통해 당장 무엇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GCF가 국제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을 성공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제대로 돕는 것이다.

 지난 11월 초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열린 제 11차 GCF 이사회에서는 기금을 처음으로 활용하게 될 8개의 기후투자사업을 승인했다.

 총 1억6천800만 달러가 투입되는 이들 사업에는 페루의 습지보호, 피지의 물관리, 말라위의 조기경보체제 등 기후변화로 인해 위험에 노출된 지역의 대응 능력을 확장하는 프로젝트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남미와 카리브해 지역을 상대로 에너지 효율을 배가시키고, 그로부터 얻은 미래의 절감액을 기초자산으로 기후채권을 발행한다는 획기적인 금융적 시도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다양한 해법을 찾아 GCF는 향후 2년 간에 걸쳐 지금까지 선진 회원국으로부터 불입된 60억 달러 전액을 투입하여 약 200여 개의 기후투자사업을 개도국에서 추진할 예정이다.

 그러나 신생 조직인 GCF는 야심차게 계획을 밀고 가는데 있어서 크게 두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첫 번째 문제는 개도국의 인적, 제도적 역량이다.

 기후사업이 효과적으로 전개되려면 사업의 현장인 개도국에 필요한 법적 장치, 경제적 인센티브 등 제도적 인프라가 깔려야 하고, 프로젝트의 경과 및 효과를 모니터링하며, 이를 검증하고, 보고할 인적 자원이 양성되어야 한다. 이런 기초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GCF가 재원을 투입할 수 없다.

 둘째, GCF가 공여하는 자금은 전체 투자액의 일부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재원은 민간에서 끌어와야 한다. 소위 금융의 레버리지(leverage)를 통해 투자 규모를 극대화해야 한다.

 따라서 기후사업은 상업적, 금융적 타당성을 입증하여 민간자본의 본능적 이기심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 두가지 문제를 GCF가 헤쳐가는데 있어서 우리나라가 도움을 준다면 사무국 소재지로서 제 역할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금융을 공부하는 연구자로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협력사업을 제안하고 싶다.

 첫째, 스태프의 수가 50명도 채 안되는 GCF는 수많은 프로젝트를 동시다발로 추진하기 위해 이행기구를 두고 있다. 지금까지 인증받은 이행기구는 총 20개 기관인데, 이 중에는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과 같이 막강한 국제기구도 있지만, 개도국의 공기업, 시민단체 등 역량이 딸리는 곳도 적지 않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약체인 이행기구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그들의 역량강화를 지원하는 사업을 펼쳐야 한다.

 둘째, 투자자의 관점에서 기후사업은 아직 수익성과 위험을 계측하기 어려운 매우 생소한 분야라는 약점이 있다. 바로 이 때문에 기후투자에 민간자본의 참여가 크게 제한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기후사업으로부터 발생하는 미래의 현금흐름과 위험을 정밀하게 계측하는 스킬을 쌓고, 이를 근거로 기후 금융상품을 개발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특히 한국과 중국이 공조하여 아시아권 기후사업을 풀링하고, 이를 근거로 위안화 표시의 유동화 기후채권을 발행한다면 세계가 주목할 것이다.

 국격을 세우는 일은 기업체가 브랜드를 키우는 일과 다르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부응해야 한다. GCF와 함께 떠오른 기후금융이란 전 지구적 의제에 우리나라가 천착한다면 우리의 국격은 자연히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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