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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하기 칼럼니스트/작가
11월도 중순이다. 연말연시 분위기가 난다. 각종 모임에는 으레 술자리가 있기 마련이다. 한국인들은 일년 평균 10리터를 마셔 세계에서 11번째 술을 많이 마시는 국민으로 조사되었다. 술을 고래로 마신다. 그냥 술만 죽어라고 마시는 것보다 술자리는 낭만이 있는 것이 좋다. 난 술 자리에서 한시를 읊는 친구를 알고 있다. 그는 시흥이 걸리면 여러 한시들을 읊는데 그 중에 이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의 시를 외우면 분위기가 만점이었다.

 "하늘이 술을 사랑하지 않았으면(天若不愛酒)/하늘에는 술별이 없었을 것이고(酒星不在天)/땅이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地若不愛酒)/땅에도 술샘이 없었으리라(地應無酒泉)/하늘과 땅이 이미 술을 사랑했거늘(天地旣愛酒)/내가 술을 사랑하는 건 부끄러울 게 없다네(愛酒不愧天)"

 하지만 술은 사람을 패가망신시키는 대명사로 거론된다. 술을 마시기 전에는 고양이처럼 얌전하던 사람이 술만 마시면 주취호(酒醉虎)로 변해 폭력을 행사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사건사고를 저지르고 마침내 건강마저 잃게 된다. 그러나 적당하고 절제된 술은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하고 건강에 도움을 주고 정신적 활력을 준다.

 술의 기원은 생명체가 아닌 원숭이로 거론하는 경우가 많다. 원숭이들이 사과나 바나나 등 과일을 나무 틈이나 바위 패인 곳에 둔 것에 야생효모가 들어가 발효한 것이 과일주라는 것이다. 들 꿀에 빗물이 들어가면 밀주(蜜酒)가 되고, 양젖과 말젖에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면 유주(乳酒)가 된다.

 술의 본래 말은 ‘수블’이었다. ‘수블’이 ‘수을’, ‘수울’을 거쳐서 술로 변한 것으로 짐작된다. 술의 한자적 기원은 유(酉)자이다. 유자는 밑이 뾰족한 항아리 상형문자에서 나온 상형문자로 술을 발효시킨 항아리 모양에서 나왔다. 유(酉)자가 들어간 한자는 대부분 술과 발효에 관한 것이다. 취(醉), 작(酌), 례(醴), 순(醇), 작(醋), 장(醬) 등이 그 예다.

 한국의 술 문화도 역사가 오래되었다. 우리 민족은 술 마시기를 아주 즐겼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보면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삼한의 시월 상달제 같은 제천행사 때 밤새 술을 마시고 춤과 노래를 불렀다는 한결같은 기록이 나온다.

당나라 풍류객들 사이에는 신라주와 고려주가 알려졌다. 고려시대에는 누룩으로 발효하던 발효주에서 벗어나 술을 증류해 도수와 순도를 높이는 소주제조법이 도입되었다. 이 증류주는 아랍에서 온 것이라 해서 아락술이라고 했는데 이런 누룩 발효법과 증류주 제조법은 일본에 전해져 일본 술의 발달에 기여했다.

 대표적인 아락주인 안동소주는 고려 때 원나라에서 전해진 것으로 기장을 증류하는 만들어낸 명품 소주다. 충청도 청명주도 오래된 전통 명품주다. 색깔은 진한 감색이며 감칠맛이 뛰어나 마누라와 청명주를 바꾸라고 한다면 청명주를 택했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한 술은 역시 막걸리다. 막걸리는 순하고 부드러워 목에 술술 넘어갔다고 해서 술이라는 말이 생겼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이다. 막걸리에서 거른 것이 청주이고 그것을 증류한 것이 소주였다.

 소주에 가향을 한 이화주 도화주 연엽주 송화주 죽통주 두견주가 있고, 약재를 넣은 건강주인 구기주 오가피주 창포주 밀주 호골주 사주 무술주가 있었다. 전통주 중 고급술에 속하는 청주는 춘(春)자가 들어간다. 호산춘, 약산춘, 봉래춘 등이 있었고, 최고 고급주인 증류주로는 향온주 백하주 석탄(惜呑)주 소국주가 있었다.

 우리 조상들이 마시는 것에는 풍류가 있었다. 한 잔 하면서 고시를 낭송하고 시부를 짓고 천하의 사상을 논했다. 술은 인간의 품격을 높이는 제3의 벗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술을 마시기 위해 술을 마시는 듯하다. 벌써 연말연시로 술집마다 흥청망청이고, 거리마다 술시비로 넘쳐난다. 연말연시 하늘에는 술별 땅에는 술샘이 아니라,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가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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