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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실 대한결핵협회인천지부장
최근에 본 영화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영화는 ‘국제시장’이었다. 50~70년대 살기 힘든 시기에 잘 살아 보겠다고 온 몸을 던져 고생하는 어머니, 아버지가 바라던 한 가지 바람은 비록 지금 살림살이가 어렵지만 자녀교육을 통해 미래에 잘 살아보겠다는 삶의 의욕이 설명되지 않아 조금은 아쉬웠다.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가장 피폐한 현장은 아마 교육 현장일 것이다. 먹고 살기가 바쁜 현실에서 자녀교육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지만, 당시 어머니 아버지는 먹는 것보다 먼저 자녀를 가르치려고 한 것이 오늘의 경제 부국을 이룬 것이다. 바로 그 부분이 조금이라도 더 설명되었더라면…

 당시 부산에 못지않게 인천에도 곳곳에 많은 피난민이 몰려들어 중앙시장 주변 특히 양키시장이나 배다리시장 등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가까운 송현동 산꼭대기, 화수동 수문통 부근, 좀 멀리 독쟁이 지역까지 퍼져 살면서 자녀교육에 힘을 쏟았다.

피난지 인천에 새로운 학교터를 잡은 송도고, 인천사범(개성 사범의 후신)등과 함께 지금은 없어진 황해중학교, 무궁화초등학교 등이 있어, 많은 학생을 수용할 수 있었다. 당시 선생님들은 박봉에도 한반에 70~80명 이상의 학급 학생을 가르치며 더욱이 3부제 수업까지 마다하지 않고 가르쳤다.

교실 복도나 교실 바닥에 앉아 수업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야간등화 관제와 전력부족으로 학생 개인별로 가져온 토막양초를 켜고서 선생님과 함께 공부한 경우도 있었다. 이들이 훗날 경제발전의 역군으로 오늘의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었다. 그래서 교육은 한 나라의 20~30년 뒤를 말해주는 국가발전 선행지표라고 한다.

 한 국가나 사회의 발전과 이웃 국가와의 경쟁에서 승리는 초등학교의 학습열기, 중·고등학교의 뜨거운 교수-학습이 있는 교단에서 결정된다.

 지금 세계 G2국가로 발돋움하는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경제력과 국가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중국은 교육을 통해 세계 제1의 대국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주변국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힘은 바로 학교교육 현장에서부터 이루어지고 있으며, 우리나라 진보교육감이 주장하는 평등교육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영재를 선발해 수월성 교육을 하는 학력중점학교를 운영하며 이루어지고 있다.

일개 지방인 상하이에만 그러한 영재교육학교가 100여 개가 넘게 있다. 또한 평균수업시간은 세계에서 제일 길고, 모든 학교가 학교별로 영재학급을 만들어 차별화된 교육과정을 제공한다.

중학생을 시험으로 선발하기 때문에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치열한 입학경쟁을 벌인다.

중국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공교육과 수월성 교육은 중·고교에서 학교별로 학생 선발권을 가지고 있으며, 학생·학교간 경쟁이 치열하며 또한 같은 학교에서도 모든 학생이 똑같은 교실에서 똑같은 수업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학습능력에 따라 우수학생을 위한 영재학급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15억 이상의 거대인구 중국이 세계 1위의 교육력을 바탕으로 앞서가는 과학·기술 경쟁력을 이루어 세계의 중심국가가 될 때 현재 한국의 진보교육감이 주장하는 평등 교육역량으로는 또 다시 지난 5천 년 역사에서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역사가 또 다시 되풀이 되지 않을까? 또 다른 이웃 강국 일본과 초대형 국가인 미국, 러시아의 틈바구니에서 앞으로 우리의 위치는 어디에 있게 될 것인가?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편한 진보교육인 시험안보기, 아침 늦게 9시 등교하기, 흐트러진 자세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두발규제완화, 학생 개성을 살린 난잡한 복장과 요란한 화장을 학생 교육복지로 내세우는 노동조합 출신 교육감, 그리고 교실현장에서 시대착오적인 이념으로 무장하고 학생들에게 편향된 이념에 따라 현대사교육을 가르치려하는 편향된 선생님에게 교육을 맡기면 과연 우리 사회가 교실에서 경쟁력 있는 밝은 미래를 찾을 수 있을까?

 한국교육은 중국과 반대로 가고 있다. 좌파 교육이념에 갇혀 평등교육으로 국민의 교육 열기를 꺾는 것은 일제식민시대에 일본 식민지배자가 펼쳤던 교육 우민정책(愚民政策)과 다름이 없다.

교육 수요자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학습의욕을 방해함으로써 교육공급자인 소수 교육 지배층인 교육귀족 노동자로써의 위치확보를 위해, 교육지배자에 대한 비판력을 빼앗아 학습자를 수동적 존재로 만들어 교육현장에서 지배체제의 안정화와 강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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