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봉숭아 시인으로 불린다.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라는 아름다운 화초를 좋아해서만은 아니다. 반달같이 흰 손톱에 꽃물을 들이던 옛 시절을 그리워해서도 아니다. 그에게 봉숭아란 아내 사랑의 표상이다.

물질적 풍요로움 대신 소박한 사랑의 표현으로 아내의 손톱에 봉숭아꽃 물들여 주기를 시작해 1996년부터 문단지에 아내 사랑을 담은 ‘봉숭아 사랑’이란 연작시를 발표해 붙여진 별명이다.

그렇게 시인이자 수필가인 함용정(61)작가의 글엔 박봉의 월급으로 변변한 옷 한 벌 사 준 적 없는 아내 박영숙(60)씨에 대한 미안함과 소박한 사랑이 가득하다.

"1975년 인천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지난해 12월 공촌정수사업소장을 끝으로 정년퇴임할 때까지 남편인 저와 대가족의 시중을 정말 다소곳이 했죠. 비록 좋은 옷을 입지 못하고 나 보란 듯 돈을 쓰지는 못했지만 아내 덕에 아이들이 잘 컸고, 가정도 이만큼 화목하니 바랄 것이 없어요."

그의 대표 시인 ‘봉숭아 사랑’ 중 하나는 인천 부평의 조그만 다다미 집에 4대가 모여 살던 종갓집의 며느리였던 아내에 대한 사랑을 읊고 있다.

"한 장의 신문이면 커다란 방을 만든다/ 그 안에 가득 별을 담는다/ 그녀와 오늘도 별자리 여행을 떠난다/ 슬픈 오르페우스의 노래 거문고자리에 머물다가/ 칠석날의 아름다운 만남의 주인공인 독수리자리에 멈춘다/ (중략) /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아보는 순간/ 어느새 이렇게 메말랐을까 생각을 하다가/ 울컥 가슴이 메어진다."

그런 아내가 지난 8월 담낭암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항암치료를 받아 호전되고 있는 상태지만 시인의 가슴은 아프기만 하다.

"상당 기간 치료가 계속될 동안 대신 집안일을 하며 아내를 보살펴야죠. 봉숭아 사랑 40편 정도를 써 놓았는데 창작활동도 계속 이어가 70편이 모아지면 시집으로 엮어 아내에게 선물하고 싶어요."

그는 현재 아내를 돌보며 창작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작품활동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말한 함 작가는 사실 인천에서는 지역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큰 작가 중 한 명이다. 공무원 재직 중 등단작가 8인을 중심으로 한 ‘푸른시문학회’를 조직하고 1989년 전국 지자체 최초로 창간된 공무원 문예지 「문학산」의 8대 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문학인구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말 한 예술인단체의 상도 받을 예정이다.

정년퇴임해 가정과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그에게 작가로서의 포부에 대해 물어봤다.

"당연히 좋은 작품을 써야겠다는 생각뿐이죠.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1만3천여 명에 이르는 인천지역 공무원 중에 문학을 아끼고 사랑하는 후배들이 좀 더 많이 나왔으면 해요. 바쁘고 힘든 생활 때문인지 시 낭송회·작품활동 등에 참여하는 신진 작가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워 아쉽죠."

김경일 기자 ki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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