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쓴 책의 표지만 바꿔 자신이 펴낸 책으로 출간한 대학교수 200여 명이 검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의정부지검 형사5부(권순정 부장검사)는 저자가 표기된 표지만을 바꾸는 이른바 ‘표지갈이’ 수법으로 책을 내거나 이를 묵인한 대학교수 200여 명을 저작권법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24일 밝혔다.

또 교수들의 범행을 알면서도 책을 발간해 준 3개 출판사 임직원 4명도 입건했다.

입건된 교수들의 대학은 수도권에서 제주에 이르기까지 전국 50여 곳으로 국·공립 대학을 비롯해 서울의 유명 사립대도 있다. 이들 가운데 스타 강사와 각종 학회장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교수들은 기존 전공서적의 내용은 그대로 두고 표지에 적힌 저자명만을 자신의 이름으로 바꿔 출간했고, 일부 교수는 의심을 피하려 책 제목에 한두 글자를 넣거나 빼는 수법을 썼다.

검찰은 지난달 교수들이 속한 대학과 서울, 파주지역 출판사 3곳 등을 압수수색해 이메일, 연구실적 등 범행 증거를 확보하고 최근 교수들의 소환 조사를 마쳤다.

검찰에 따르면 확보된 책들은 대부분 이공계 서적들이며 소량으로 제작돼 해당 교수의 대학 근처 서점에서만 판매됐다.

또 대부분 교수 1명이 표지갈이 수법으로 전공서적 1권을 출간했고 일부는 3∼4권 펴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소속 대학의 재임용 평가를 앞두고 연구실적을 부풀리고자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으며, A대학의 한 학과에서는 교수 8명 중 4명이 표지갈이 수법으로 전공서적을 출간한 것으로 드러났다.

원저자 교수 30여 명은 자신들의 책이 남의 이름으로 유통되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공계 서적을 꺼리는 출판업계 특성 때문에 출판사 확보를 위해 표지갈이를 묵인했다. 일부 교수는 한번 표지갈이로 책을 출간했다가 다른 곳에서 책을 내지 못하게 하려는 출판사에 약점을 잡혀 어쩔 수 없이 이름을 빌려주기도 했다.

검찰은 이처럼 실제 책을 쓴 원저자와 허위 저자, 출판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전국 대학에서 표지갈이가 만연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현재 대부분의 혐의가 입증된 상황으로 검찰은 기소 기준을 결정해 늦어도 다음 달 중순 재판에 넘길 예정이다.

입건된 교수들은 각 대학이 논문 표절 교수와 법원에서 벌금 300만 원 이상을 선고받은 교수를 재임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에 따라 대부분 대학에서 퇴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대부분의 표지갈이가 각 대학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의정부=신기호 기자 skh@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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