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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연구소 소장
이제 김영삼 전 대통령님은 영영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이 땅에 민주주의라는 나무를 심고 가꾸어 꽃피고 열매를 맺게 하신 위대한 지도자이시며, 어둡고 암울했던 시대에 횃불을 밝히며 희망의 내일을 위해 분투하신 신념과 결단의 아이콘이 세상을 떠나신 것입니다.

 슬픔과 아픔을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님이 보여주신 그 정신과 철학은 퇴색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선명하게 우리와 대한민국의 앞길을 비추어 주는 향도가 되고 있음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고 있습니다.

 ‘올바른 길을 걸어가면 거칠 것이 없다(大道無門)’는 님의 좌우명은 우리 후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타오르고 있습니다. 어떤 역경도 신념을 꺾지 못할 것이고, 민주화와 자유, 그리고 평등의 가치가 반드시 실현되리라는 믿음으로 토로하신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그 말씀도 이제는 역사의 기억이 아니라 더욱 보듬고 간직해야 할 비문이 되고 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님.

 수많은 공적을 이루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정권이 바뀌면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안타까움을 이제 님이 떠나신 자리에서 하나하나 되새겨 보는 못난 우리를 용서하소서.

 험악했던 유신정권과의 정면대결, 연장된 군부독재에 맞서 목숨을 거셨던 단식투쟁, 군부정치 비밀사조직인 하나회를 전광석화처럼 해체하신 일, 수많은 반대와 우려 속에서 결행한 금융실명제, 몸소 재산을 공개하면서 시행한 고위공직자 재산등록제, 외환위기 탓에 절하된 수많은 경제적 업적과 세계화 추진의 혜안 등등을 일일이 열거하는 까닭은 님을 떠나보낸 우리의 슬픔과 아픔을 다소나마 위로해보고자 하는 그런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님이 하신 일 모두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또한 미래를 향하는 디딤돌임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함을 반성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님.

 저에게 각인된 님의 모습은 어찌 보면 작은 단면일지 모르나 진정 위대하고 님만이 보여줄 수 있었던 아름다움이기에 마지막 가시는 길에 한송이 국화처럼 바치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1987년. 군정종식이 눈앞에 다가왔으나 야권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탓에 허망하게 날린 그때입니다. 선거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날 한남동의 아담한 레스토랑에서 님을 만났을 당시의 모습이 서거 소식과 함께 불현듯 제 머리를 강타했습니다.

 그 당시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억장이 무너지고, 검게 탄 숯덩이처럼 처참하셨겠습니까. 형언키 어려운 분노와 절망은 또 어떠하셨겠습니까. 그러나 님은 의연하셨습니다. 담대하셨습니다. 오히려 따뜻한 미소로 우리를 위로하시며 용기를 잃지 말라며 격려하셨습니다. 진정 거산(巨山)이었음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님.

 님은 떠나셨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님은 불사조입니다. 한 시인이 이런 시구를 남겼습니다.

 세상에는 변치 않는 마음과/ 굴하지 않는 정신이 있다/ 순수하고 진실한 영혼들도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가진 최상의 것을 세상에 주라/ 최상의 것이 너에게 돌아오리라/ 사랑을 주면 너의 삶으로 사랑이 모이고/ 가장 어려울 때 힘이 될 것이다/ 삶을 신뢰하라. 그러면 많은 이들이/ 너의 말과 행동을 신뢰할 것이다/ 마음의 씨앗들을 세상에 뿌리는 일이/ 지금은 헛되이 보일지라도/ 언젠가는 열매를 거두게 되리라/ 왕이든 걸인이든 삶은 다만 하나의 거울/ 우리의 존재와 행동을 비춰 줄 뿐/ 자신이 가진 최상의 것을 세상에 주라/ 최상의 것이 너에게 돌아오리라.

 그렇습니다. 님의 일생은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 신념과 결단의 연속이셨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애국애족의 길을 걸으셨던 것이지요.

 김영삼 전 대통령님.

 통합과 화합이란 말씀을 끝으로 남기셨다지요. 그 말씀을 아로 새기며 우리 모두가 님을 추모하겠습니다. 손 모아 명복을 빕니다. 영면하소서. 우리의 영웅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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