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권홍.jpg
▲ 류권홍 원광대 로스쿨 교수
사법시험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했던 이유들은 모두 망각한 채, 법학전문대학원 유치에 실패한 기존 법대 교수, 신림동 고시촌을 지역구로 하는 정치인, 그리고 세상의 변화에 역류하려는 일부 법조인들을 중심으로 사법시험의 존치가 주장되고 있다. 제도적으로 실패한 일본을 본받자는 것이다. 그들이 가장 먼저 내세우는 주장이 법학전문대학원 등록금이 비싸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고려대학이 한 학기 등록금이 1천만 원을 넘어 가장 비싸지만, 충북대학은 약 450만 원이다. 전체적으로 사립은 좀 비싼 반면, 국공립은 그렇게 높지 않다.

 그리고 등록금을 근거로 하는 사법시험 존치론의 근본적 하자는 법학전문대학원의 높은 장학금 지급률은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총액의 37%가 넘는 등록금을 다시 장학금으로 돌려주고 있다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장학금을 반영한 법학전문대학원 전체 평균 1년 실질 등록금은 894만 원인데 반해, 의학전문대학원은 1천290만 원, 경영전문대학원은 1천690만 원에 이른다.

 그리고 사법시험을 존치시킨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희망 사다리가 유지될 것이라는 주장도 허구일 뿐이다. 절에서 공부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해서 시험에 합격하던 세월은 과거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사법시험을 위해 신림동 고시촌에서 공부하려면 숙박비, 학원비, 도서구입비 등 많은 돈이 필요하다. 결국 재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되었다.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최소 50%가 넘는 합격률이 보장되는 법학전문대학원의 소수자 전형을 통해 전액장학금을 받고 3년 열심히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는 것이 진정한 ‘희망 사다리’인 것이다.

 그들이 공부하는 동안 생활비가 문제된다면 대학과 사회 그리고 이미 많은 혜택을 받은 사법시험 출신 선배 변호사들이 도와주면 된다. 또한 소수자, 약자들의 취업 문제도 사법시험 출신의 선배 변호사들이 채용에 힘써주면 될 것이고, 시군구의 법무담당관실에 그들을 우선 채용해주면 될 일이다. 그것이 변호사의 사회적 책임이고 국가가 소수자를 진정으로 보호하는 길인 것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라 사법시험이 존치된다면 누구에게 이득이 될까? 냉정히 바라보건데, 희망을 찾는 소수자, 경제적 약자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법시험 존치는 다시 서울의 몇몇 유수대학의 학생들이 전공을 불문하고 사법시험에 매달리는 원인이 될 것이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부모를 둔 경우 합격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한편, 제한된 숫자의 사법시험 합격자들은 다시 사회적 귀족 계층이 될 수 있다는 특권의식과 동료의식에 사로잡힐 것이다.

이렇듯 사법시험 존치 주장은 역사를 다시 돌려 사법시험 폐지의 근본 원인이었던 특수한 계층을 다시 되살리자는 것과 다름없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사법시험 존치에 목소리를 높이는 일부 법과대학의 교수님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본인들이 다니는 대학의 제자들에게 희망을 주기보다는 주요대학의 학생들 그리고 있는 사람들의 기득권을 보장해주자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수년에 한 명씩이나마 합격이 가능할지 모를 사법시험으로 제자들을 몰아 갈 것인가, 아니면 기회가 더 넓은 지금의 법학전문대학원을 통해 제자들을 변호사의 길로 인도할 것인가 잘 판단해야 한다.

 특정대학 출신 비율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법학전문대학원들은 20% 이상을 지역 대학 출신으로 선발하고 있다. 그리고 연소득 2천600만 원 이하인 경제적 약자 비율이 20%를 넘고 있다.

하지만, 사법시험은 시험성적만을 기준으로 선발하기 때문에 소득이나 지역을 고려할 수 없다. 사법시험은 희망 사다리가 아니라 로또인 것이다.

공정과 형평을 덕목으로 하는 법조가 사법시험과 변호사시험 출신으로 이원화된 골품 구조의 변호사 계층을 만들자고 주장하면서 갈등을 양산하고 있다. 이는 그나마 낮은 국민들의 법조에 대한 신뢰마저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고 말 것이다.

 국가적으로는 소를 키우는 사람보다 소를 잡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지 않아야 하며, 사회의 인재들이 법조가 아니라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분야에 매진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가 밝혀진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