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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연 인천시궁도협회장

인천언론인클럽 시상식이 있던 날, 옆 방 전시실에서는 박재만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건너편 벽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대형 그림 ‘춤추는 소나무’는 흔히 접할 수 있는 십장생 소나무였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본 실상은 단순한 동양화가 아니었다. 붓을 휘둘러 그린 것이 아닌 제 각각의 색깔을 띤 수많은 점들을 찍어 한 폭의 그림을 완성시킨 거대한 작품이었다.

 도대체 몇 십만 개의 점들이 도열해 있는 것일까.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나에게 박재만 화가는 이것이 바로 점묘화라고 설명해 준다.

오래전 나열된 글자에 흑백 명암을 덧 씌어 초상화를 출현시킨 작품을 보고 신기해 한 적이 있었는데 컬러의 작은 점으로도 한 폭의 동양화를 탄생시킬 수 있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는 한때 조형물을 하는 선배를 도와 색유리 모자이크 벽화를 시공한 적이 있었다. 그 경력이 훗날 모자이크 회화를 동양화에 접목시킨 계기가 된 것이다.

 모자이크 회화는 인내를 담보로 요구하는 작업이었기에 온종일 점을 찍어도 좀처럼 작업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따분함보다 오히려 즐거움을 느끼며 동양화의 정체성인 선묘를 견고하게 한 다음 모자이크법을 점묘 색채법으로 바꾸었다.

 박재만의 이번 8회 개인전은 인천문화재단의 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 공모에 선정되어 2005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의 작품을 전시했다.

인천문화재단의 후원을 받기에 합당하다는 공감은 나뿐만이 아니리라. 그는 조선초기부터 후기까지의 그림 중 7할이 소나무임을 발견하고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소나무에서 시작했다.

소나무는 그의 분신이 되어 딸의 이름도 소나무 송(松)자를 넣은 ‘송이’라 지었고 거리를 지나다 간판조차도 소나무와 연관된 것이면 유심히 바라보았다.

소재는 같은 소나무였지만 수많은 점과 모자이크를 통해 솔가지에 온갖 생명을 탄생시켰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도 ‘진송전’이라는 제목으로 정하고 진정한 나만의 소나무를 의인화하여 용, 봉황, 학 등 다양한 형태의 소나무를 선보였다.

 작품 ‘호작송’에서는 호랑이를, ‘한반도송’은 우리나라 지도를, ‘삼학송’은 날개를 펼치고 비상하는 세 마리 학의 우아한 자태를, ‘봉황송’은 날개를 내려트리고 나무에 걸터앉은 봉황을, ‘청룡송’에서 머리에 그려진 두 개의 솔방울은 화룡점정을 암시하는 눈을 읽을 수 있었다.

 ‘부부송’은 남편인 청송이 부인인 적송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거니는 모습을, ‘월야송’은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남녀 두 소나무가 부여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고 보물을 감추듯 겹겹이 암술을 감싼 모란의 꽃잎엔 ‘부(富)’라는 제목으로 붙였다.

그는 소나무를 현대적 미감으로 표현했고 음과 양의 형태로 의인화했으며 상극이 상생 조화를 이루므로 써 활기찬 세상을 꿈꾸는 형상으로 환생시켰다. 내가 사춘기 시절 지금은 건설직업훈련원이 들어선 만수동 뒷동산에 올라 저녁노을을 바라보던 추억이 떠오른다.

 당시만 해도 대기 오염은 낯선 단어였기에 황혼이 붉게 물들어 갈수록 서쪽 하늘을 장식한 웅장한 구름의 자태에서 꿈의 궁전, 화사한 꽃잎, 불사조 등 상상의 나래를 펴면 펼수록 끝없는 환상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노을 속에서 숨은 그림을 찾았듯이 그의 작품 속 소나무를 여러 각도에서 공제선과 함께 바라보면 다양한 형태를 연상할 수 있다.

그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던 시절,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산수화 4대가인 청전·심산·의제·소정의 전시회를 감상하며 진한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다.

청전 이상범의 작가노트에 적힌 ‘우리의 그림에는 우리의 분위기가, 우리의 공기가, 우리의 뼛골이 배어 있어야 한다. 남의 흉내가 아닌 제 것 제 생명이 깃든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내용이 가슴에 와 닿았다.

2013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전통 수묵화 수업에 출강하여 학생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그는 온고지신의 작품 세계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는 지금 동양화과의 위기라고 하지만 전통을 잘 이해하고 극복하면 발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확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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