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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문득 세모가 머지않았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스산하다. 한 해가 이렇게 훌쩍 가는가? 빠른 정도가 아니라 덧없이 느껴진다.

분명 좋은 날과 궂은 날이 있었고 일마다 곡직(曲直)이 있었을 터인데, 그것을 가려 생각이 들지 않고 그저 1년이 쏜살같이 지났다는 감회뿐이다. 이렇게 해가 싸여 마지막이 되면, 인생이 한갓 조밥 짓는 사이 80년이 흘렀다는 ‘여옹침(呂翁枕)’ 같다고 할 것인가.

 몸담고 있는 곳을 둘러보니 그야말로 크고 작은 일이 많았다. 연초 내부 인사(人事)를 비롯해서 각가지 사업과 행사의 홍수 속에서 앉고 서고, 달리고 멈추고 했던 것이다. 고난도 많았고 기쁨도 컸었다. 보람스럽기도, 또 괴로웠기도 했다.

그러나 친지 하나가 ‘그 나이에 매일 출근을 해 일터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한 말을 떠올리게 되면, 넥타이와 와이셔츠 대신에 그의 일상복이 되다시피 한 등산 복장을 기억하게 되면, 아무래도 나의 지난 1년은 ‘보람’ 쪽에 더 무게를 얹어야 할 것 같다.

 보람이라! 출근 자체만으로도 이 한 해가 보람 있는 해였다면, 물론 행복하다. 그렇다고 한다면 앞에서 경망스럽게 세모 운운하면서 해가 가는 것이 덧없다느니, 쏜살같다느니, 하며 여옹침 이야기까지 한 것을 여기서 취소한다. 그러면서 더 심중히 생각해 보니 정말 보람 있는 일이 있었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참으로 고맙고 좋은 분, 두 분을 만난 일이다.

지난 여러 가지 사업 중에서 크게 의미를 둘 만한 것의 하나가 ‘2014∼2015 세계 책의 수도 인천’ 행사의 일환으로 개최했던 ‘시민과 명사가 함께하는 100인 애장(愛藏) 도서전시회’이다. 자기가 평생 서재 깊숙이 간직해 오는, 가장 아끼고 귀히 여기는 책을 전시해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 애장 사연까지 나누어 감상하는 것이 이 전시회의 뜻이었다.

 여러 제약 때문에 그것이 ‘1000’이 되고 ‘10000’이 되지 못한 채 ‘100인’에 머문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그나마 다음 기회를 약속할 수 있어서 보람 있는 행사였다.

 또 한 가지는 재정 부족으로 어려운 우리 인천의 문화 예술계에 적게나마 힘을 보태고, 이를 통해 자생의 기틀을 마련 한다는 취지로 시작한 ‘아트레인(Artrain)’ 기금 모금 사업이다.

이 말은 아트(Art)와 트레인(Train)의 합성어로 ‘문화 예술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가진 분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동행한다.’ 쯤으로 해석하면 되리라.

100인의 최초 기부자로부터 출범한 이 사업이 불과 두 달이 경과한 지금은 200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바로 이 두 행사와 관련해서 두 분 ‘좋은 분’을 만난 것이다. 아니 두 독지(篤志)를 만난 것이다. 한 분은 현 인천 법조(法曹) 수장(首長)의 한 사람이다.

속 시원히, 인천검찰청의 수장이라고 말하겠다. 이분도 지난 번 책 전시회에 참여한 바 있고, 그 개막식 때도 참석을 했다. 참석 직후 돌아가서 이분이 기부금으로 금일봉을 보내 왔다.

 명목은 우리 아트레인에의 동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내 한 기관장이 다만 인사로 보내는 종류가 아니었다. 진정한 애정과 이해가 담긴 마음으로의 동참이었다.

이렇게 말하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이분은 한 달에 대략 100권 쯤 책을 사서 나누어 주는 것을 거의 취미처럼 계속하고 있는 분이다. 내게도 두 권의 책을 선사하기도 했다.

또 인천에 부임해서는 인천을 알아야 한다는 뜻에서 시내 요소요소를 탐방하거나 심지어 허름한 서민들 밥집까지도 우정 찾아가는 친밀하고 소탈한 분이었다. 이런 분의 동참이 어찌 진정으로 내면에서 우러난 정과 이해가 아니겠는가.

 또 한 분은 금융계 인사였다. 이 역시 속 시원하게 한국은행 인천본부장이라고 말하겠다. 이분은 평소 지역 대학 동창회의 문화 포럼을 이끌고 있다.

이 외에도 지역의 여러 일을 맡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이분의 문화 예술에 대한 사랑과 애정은 아주 남다르다. 지난 1년 동안 많은 행사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해 주었다.

이분 역시 직접 이번 ‘아트레인’에 동참했다. 본인뿐만 아니라 금융계 주변에도 설득과 독려를 통해 우리의 기부금 모금 행사를 진정으로 도와주었다.

 단순한 이해(利害) 때문에 이분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분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 예술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분들이 계시는 동안, 이 같은 분들이 동참해 주는 한, 비록 현재는 어렵더라도 문화 예술계는 외롭거나 허황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얼마든지 용기를 내어 앞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세모 가까이에서 한해가 빠르게, 쏜살같이, 덧없이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 두 분을 생각할 것이다. 여옹침 같은 고사(故事)도 그저 한낱 고사로서만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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