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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하기 칼럼니스트/작가
박어둔은 독도지킴이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선왕조실록 숙종조에 안용복보다 먼저 나온다. ‘계유년(1693, 숙종 19년) 봄에 울산의 고기잡이 40여 명이 울릉도에 배를 대었는데, 왜인의 배가 마침 이르러, 박어둔(朴於屯)·안용복(安龍福) 2인을 꾀어내 잡아서 가버렸다.

 그 해 겨울에 대마도에서 정관(正官) 귤진중(橘眞重, 다치바나 마사시게)으로 하여금 박어둔 등을 거느려 보내게 하고는, 이내 우리나라 사람이 죽도에 고기 잡는 것을 금하기를 청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박어둔이 도일한 후 귀국해 받은 공초(供招)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박어둔(朴於屯)은 1661년 울주군 청량면 목도리에서 처 천시금(千時今), 부 정병(正兵) 박기산(朴己山), 조부 박국생(朴國生)은 정3품 통정대부이고, 증조부 박잉석(朴芿叱石)은 종2품 가선대부, 외조부는 정로위 윤수금(尹守今)으로 대대로 당상관 벼슬을 한 집안이었다.

 헌데 무슨 까닭인지 경주 박씨 집안은 몰락해 박어둔 때에 신량역천(身良役賤, 신분은 양반이나 직업은 천직)인 울산 병영 염간(鹽干, 소금을 제조, 판매하는 자)이 되어 신분이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박어둔은 재부를 가진 자로 울산어부 40여 명을 이끄는 어선의 선주이기도 했다. 박어둔은 배에 안용복 행수를 태워 울릉도와 독도를 수시로 드나들었고, ‘1693년 3월에 배 3척에 울산어부 40여 명과 벼 25석과 은자(銀子) 9냥 3전(현 시가 약 7천만 원) 등의 물건을 싣고 고기와 바꾸고자 울릉도에 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결국 일본은 독도에 자주 드나들던 어부들의 우두머리인 박어둔이 눈엣가시였다.

임진왜란 이후 독도와 울릉도를 점유하고 있었던 왜인들은 먼저 어부 40명의 우두머리인 박어둔을 표적으로 삼아 납치했다.

그러자 책임감이 강하고 일본어 통역이 가능했던 안용복은 박어둔이 납치된 사실을 알고 즉각 박어둔을 따라 함께 일본까지 동행했던 것이다.

박어둔과 안용복은 일본에 가서 일본 관리들과 담판을 벌였다. 주로 일본 관리들과 대화하는 자는 일본어가 가능한 안용복이었다.

 안용복은 독도와 울릉도가 조선 땅이며 왜인들이 함부로 출어해 고기를 잡지 못하도록 조처해달라고 도쿠가와 막부에 요구했다. 왜인들이 애당초 노렸던 어부들의 우두머리인 박어둔도 당연히 안용복과 같이 이야기했을 것이다.

 박어둔은 왜인들 앞에서 얼마나 호랑이처럼 위풍당당하게 말했는지 왜인들은 박어둔을 ‘박도라베에(朴虎兵衛)’, ‘박도라헤(朴虎平)’라고 부르며 두려워했다. 일본말 ‘도라’는 호랑이란 뜻인데 그가 호랑이처럼 위풍당당한 면이 있었을 것이다.

 박어둔과 안용복은 1693년 4월 18일 일본으로 도해해 1693년 12월 10일 동래 왜관에서 나올 때까지 약 8개월간 일본에서 도쿠가와 막부와 일본 관리들과 울릉도와 독도 문제로 영토 쟁계(爭界)를 벌이며 민간외교관으로서 활약을 벌였다.

둘은 도쿠가와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땅이라는 도쿠가와 막부의 서계(書契, 일본 막부의 외교문서)를 받아왔으나, 나가사키 봉행과 대마도 도주의 간계로 그 서계를 빼앗기고 말았다.

하지만 박어둔 안용복이 민간외교관으로 활약한 8개월이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 땅으로 확약받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박어둔, 안용복이 돌아오고 난 뒤 조선 조정과 일본 막부 간에 치열한 독도 쟁계(爭界)가 있었고, 마침내 박어둔 안용복이 귀국한 2년 뒤인 1696년 1월 28일 일본 막부는 일본어민이 울릉도에 가는 것을 금지하는 영을 내렸다.

1차도일 때 박어둔, 안용복의 활약만으로 독도는 조선 땅이라는 도쿠가와 막부의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안용복의 2차도일(1696.4.20) 이전에 독도는 조선 땅이라는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박어둔과 안용복의 외교적 활약과 이후 조선 정부의 의지와 외교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어둔에 비해 안용복의 역할이 결코 적다는 것이 아니다. 안용복은 박어둔을 통해 더 큰 외교력과 영향력, 결정적인 힘을 발휘한 것이다.

 난 UNSUNG HERO 박어둔을 발굴해 조선의 바다와 아시아의 바다, 세계의 바다를 마음껏 항해했다. 하지만 자료의 부족, 내 역량의 한계 등으로 바다의 호랑이, 박어둔을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린 게 아닌가 염려된다. 박어둔이 주인공인 소설 ‘독도전쟁 1,2권’은 이달 하순 출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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