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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행숙 한국미래정책연구원장
며칠 전 특성화고를 졸업한 뒤 3년째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지인의 딸이 찾아와 고민을 털어놨다.

 "안정된 직장을 다니는 네가 너무 부러워"라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 친구가 자신에게 한 말이 왠지 모르게 서글펐다는 얘기였다.

 지인의 딸은 취업하고 1년 후에 대학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장녀로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겠다는 심사였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대학 진학을 미루고 있다고 하였다.

 "회사 눈치도 봐야 하고, 등록금을 마련하려면 매달 저축도 해야 하는 데. 현실이 제 생각과 너무 달랐어요"라는 말에 기성세대로서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얼마 전 인하대학교가 인천 특성화고 학생들의 진로진학 역량 강화를 위해 ‘인천지역 특성화고 교장단 초청 간담회’를 개최했고, 회의에선 선취업·후진학 제도 정착방안이 논의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요즘 청년들은 가난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70~80년대와는 다른 이유로 선취업·후진학을 선택하고 있다. 특히 특성화고 학생들은 젊은 패기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며 사회에 뛰어들고 있다. 내 손으로 돈을 벌고, 등록금을 마련해 대학에 다니겠다는 이상적인 미래를 그리는 청년들이 점점 느는 추세다. 또한 이들 청년들은 스스로 한 결정에 책임을 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이들에게는 시간적 여유가 없고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결정을 하기엔 고등학교 3년은 너무 짧다. 섣부른 결정으로 자칫 소중한 시간을 허비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대부분의 특성화고는 취업률을 올리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물론 취업률도 학교를 평가하는 데 중요한 지표로 무시할 수는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미래에 대한 꿈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진로진학 상담도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현재는 특성화고 대부분이 우리 학교 학생이 어떤 은행, 어떤 대기업에 몇 명을 취업시키느냐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성화고 대부분은 선취업·후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 대한 수요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또 졸업 후 취업을 한 뒤 대학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학교가 할 수 있는 지원이 전무한 실정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진로진학 상담이 이뤄져야 하고, 특성화고로 선택한 뒤에도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주는 사회적 기능이 절실하다.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청년들은 고민 끝에 취업하고 나서도 회사의 눈치를 보느라 대학 진학을 늦추고, 빠듯한 월급으로 대학 등록금을 내기 벅차 대학 진학을 아예 포기하고 있어 제도적인 뒷받침이 시급하다.

 또한, 업무 및 인력 공백을 이유로 재직자들의 진학을 곱지 않게 보는 기업들에도 세금감면, 보조금 등을 지원해 주는 방안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물론 정부에서 이런 방안을 추진하고는 있지만, 부처 간 견해차로 이렇다 할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재직자들의 대학진학은 단지 그들의 꿈을 실현하는 의미가 아니라, 재직자들의 능력 제고를 통해 기업의 가치를 올릴 수 있다는 인식 전환도 요구된다.

 현재 선취업·후진학 제도를 운영하는 대학은 야간수업을 하고 있어, 시간적인 제약이 불가피하다. 야간과 주말에 모든 학사과정을 소화해야 하지만 주간대학과 같이 8학기 130학점제를 적용하고 있어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따라서 교과과정을 확대해 수요를 늘리는 대학의 변화도 필요하다

 산업대학을 운영하고 있는 청운대처럼 선취업·후진학을 위한 학사운영이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일반대학들은 당장 이들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자유로운 수강신청 등 학사과정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결국 특성화고, 대학, 기업의 공동 노력만이 선취업·후진학 제도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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