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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순목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
▶장면1. 지역의 한 요양원이 매년 개최하는 자원봉사자의 날 행사에 참석했다. 예년처럼 넓직한 장소에 가득 초청된 많은 자원봉사자들로 북적북적할 것이라는 필자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 이유는 인천시가 예년에 비해 대폭 줄어든 복지예산을 편성한 이유로 일선 요양원들이 심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시 시의회의 상임위 예산 심의과정에서 줄어 든 예산의 50%를 되살리는 결정을 했지만 예산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본회의에서 이마저도 유지될 수 있느냐는 위기감이 느껴졌다.

 ▶장면2. 인천시 외곽의 한적한 모처에서 진행된 인천시민행복정책자문단 소통분과 송년의 밤 행사가 있었다. 유정복 시장이 함께 참석한 이 행사에서 필자는 좋은 음식으로 허기를 채울 것으로 예상하고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필자의 예상은 완전 빗나갔다. 잡채와 나물 순두부 등 몇 안되는 반찬에 밥과 국 그리고 국수가 전부였다.

소통분과 유광호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인천시가 재정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때에 풍요로운 음식을 준비할 수는 없었다"며 수차례 미안한 마음을 위원들에게 전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불평하거나 불만하지 않았다.

 ▶장면3. 최근 행사장에서 오래 동안 교류해 온 지역의 한 주부를 만났다. 그동안 경제적인 어려움을 모르고 살아온 것을 보아 온 터라 요즘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에게서 돌아 온 답은 달랐다.

그녀는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져서 지난 3개월 동안 생활비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며 "생활이 어렵지만 남편을 믿기에 탓하지 않고 오히려 남편 사업장에서 일을 돕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장면4. 1918년, 미국 미네소타 주 보베이(Bovey)라는 작은 탄광촌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에릭 엔스트롬 (Eric Enstrom). 어느 날 아주 백발이 성성하고 세상사에 몹시 지쳐보이는 한 노인이 보잘것 없는 신발 털개를 팔러 왔다.

그 노인은 아주 초라한 모습으로 사진관에 들어와 잠깐 쉬고자 했다. 몹시 시장했던 이 노인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기에 앞서 소박한 빵과 스프를 앞에 두고 감사기도를 드렸다.

사진사인 엔스트롬은 그 모습을 보고 큰 감동과 전율을 느꼈다. 비록 그 노인은 가난하고 삶에 지친 모습이었지만 그의 소박한 감사기도 속에서 그 노인이 세상 그 누구보다 부유한 사람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노인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나중에 이 흑백 사진을 보고 엔스트롬 씨의 딸 로다 나이버그(Rhoda Nyberg)도 큰 감동을 받아 이 사진을 유화로 그렸다.

엔스트롬은 이 사진을 통해 당시 세계 제1차 대전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 감사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 그림의 제목은 ‘The Grace’, 바로 ‘은혜’ 또는 ‘감사의 기도’이다.

 연말연시가 되면 지난 한 해의 어려웠던 일들을 잊고 새로 시작되는 한 해에는 무언가 좋은 일들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마음이 풍족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올해 곳곳에서 목격되는 풍경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분명 지난 수년간 인천시의 재정상태는 위기의 적신호를 보여왔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어느 누구도 살림살이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출산 축하금 등 그 효과성이 검증되지 않은 많은 현금 투하식 사업을 오히려 더 확대해 왔다. 현재 인천시는 복지 부문에서 구조조정을 시도하고 있다.

재정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현금잔치는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현금을 내어 줄 때 그리고 현금을 받을 때는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줄이거나 폐지하는 것은 상상 이상의 용기와 진통이 따른다. 하지만 구조조정에 대해 막연히 원안을 고집해서는 안된다. 충분한 검토 없이 남발했던 개발공약이 원안사수라는 반대에 부딪혀 진행되었지만 애초에 기대했던 정의 효과는 없었다.

물론 대책 없는 후려치기식 삭감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막연히 반대를 위한 반대, 표를 의식한 원안 사수는 안된다. 오히려 합리적이고도 고통분담 차원에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유정복 인천시장으로부터 사회 지도층 그리고 일반 서민에 이르기 까지 모두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여기에 하나 더 인천시를 정상으로 올려 놓게 되면 다시 따뜻한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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