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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호 경기도 기획조정실 평가기획팀장
‘어떠한 사실에 대하여 약속을 이행하려고 정한 법적 규범’, 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는 ‘헌장’의 의미이다. 지난주 토요일, 12월 5일은 지금으로부터 47년전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된 날이었다.

 국민교육헌장은 교육의 이념적 지표를 명시한 규범으로 1968년 12월 5일 대통령령에 의해 반포되었던 것이다.

 윤리적 정신적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한 교육의 근본목표로서 민족중흥과 역사적 사명을 중심으로 개인과 사회, 국민생활의 전 영역에서 개척·협동·국민정신의 함양을 통하여 새로운 국민성의 창조를 강조하는 내용이다.

우리 민족문화의 정통성을 유지발전시키고, 가치관의 정립을 위해 서구의 가치관과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의 조화로운 융합을 강조하며 민족의식과 주체성을 고취시켜 국민과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전통과 진보의 조화를 통한 새로운 문화의 창조, 개인과 국가가 혼연일체가 된 민주주의의 발전 등 헌장의 기본정신은 새마을 운동과 함께 20여 년간 주술처럼 국민들의 뇌리속에 각인되어오다 독재정권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었다는 의식의 확산으로 1994년 폐지되고 말았다.

 윤리와 정신적인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 학생들의 교과과정에 포함시켜 반드시 암기를 해야 했고, 중고등학교 입학시험 등에 단골메뉴로 등장했던 당시로서는 중요한 사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전통과 유산이 올바르게 계승·발전되지 못하고, 물량적 발전에 따른 정신적 가치관과 조화의 부족, 국가의식과 사회의식의 결여 등 민족 주체성 결핍현상과 교육지표의 불분명, 정신적 도덕적 교육이 소홀히 취급되고 있는 점 등 시대적·환경적 여건의 불합리성이 국민교육헌장을 제정하게 된 배경이라고 한다.

 개인과 사회, 국가의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시키고 향후 국민과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줌으로써 가정과 학교, 사회교육 등 모든 교육의 근본 지표를 찾고자 함이라는 것을 헌장의 요소요소에서 엿볼 수 있어 미루어 짐작이 가능한 것이다.

 초장에서는 우리 한민족의 긍지와 사명의식을, 중장에서는 국민생활의 규범과 덕목을, 종장에서는 조국통일의 실현과 민주주의 발전을 강조하고 있으며, 헌장의 기본정신은 민족주체성의 확립, 전통과 진보의 조화를 통한 새로운 민족문화의 창조, 개인과 국가의 조화를 통한 민주주의 발전으로 집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968년 11월 26일, 여야 국회의원이 만장일치로 본 헌장의 제정에 동의하였으며, 같은 해 12월 5일 제정·공포를 거쳐 1969년부터 공포한 날을 기념해 매년 기념행사를 실시해 오다가 1973년 3월, ‘각종 기념일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국민교육헌장 이념의 구현을 위해 법정기념일로 지정하고 기념해 왔다.

기념식에서는 행사와 함께 교육쇄신과 발전기풍을 진작하는 등 국민교육을 위해 헌신 봉사한 교육 유공자를 발굴·포상하기도 했지만,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흐르면서 정권유지 차원의 반공 독재교육의 산물이라는 이유로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삭제되었으며, 많은 국민들의 의식이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2003년 11월 27일 대통령령이 개정(제18143호)됨에 따라 헌장이 폐지되었고 기념일도 따라서 개최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국민교육헌장은 반포 25년 만에 교과서는 물론 각종행사에서 더 이상 명맥을 이어오지 못하고 과거의 유산으로 밀려나 수명을 다하고 만 것이다.

 한때 현직 대통령의 사진이 교실 칠판 위에 태극기와 함께 게시되고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국민교육헌장을 소리 높여 암송했던 질곡의 시대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이미 오래 되었다.

국민교육헌장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획일사회의 상징이었고, 사회의 다양성이 획일성의 장벽에 가로막혀 수용되지 못한다면 자유와 창의적인 마인드로 이 시대를 맘껏 호흡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지금 우리 사회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급격히 변화하고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터진 봇물처럼 분출되는 다양한 사회적 욕구와 자기주장, 근시안적 이익추구, 통합 보다는 분열되는 모습을 자주 접할 때, 당시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면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헌장’과 같은 법적 규범 하나쯤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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