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時調시인.jpg
▲ 김락기 時調시인
세밑이 다가온다. 수안보에는 지난 주 큰 눈이 내렸다. 저 깊은 땅속은 그리도 뜨거운 속정이 끓고 있건만 땅위의 거리는 냉정하리만큼 차갑다. 충주 시내보다도 2~3℃ 더 온도가 낮다. 강원도 오지 같은 날씨다. 그런데 사람으로 치면 참 건강한 몸이라 하겠다.

뜨거운 가슴에 냉철한 두뇌를 가졌으니 말이다. 바깥세상은 IS테러다, 한중FTA다 하여 시끄럽지만 수안보의 흰 눈은 어김없이 온 산골을 감싸 안는다. 순백의 저 앞산에 이내 속이 다 젖어든다.

 80·90년대의 수안보는 신혼여행을 올 만큼 그야말로 최고의 온천관광지였다. 4인조 밴드 ‘와이키키 브러더스’ 영화까지 만들어질 정도였으니 오죽하랴. 세월의 흐름에 영화(榮華)는 가고 사양길을 걷던 이곳도 이제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아무렴, 3만 년의 긴 역사를 가진 온천수가 지금도 섭씨 53도의 열혈을 뿜으면서 연면히 이 땅을 지키고 있음인데.

 그래 수안보는 부활의 조짐을 보이건만 우리 시조(時調)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2년여 전, 수안보에 부임하자마자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을 맡으면서 운명처럼 시조와 수안보는 만났다.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 한겨레의 시가(詩歌) 가운데 종가(宗家)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시조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문학 갈래다. 약 천여 년의 전통을 가졌다. 그래서 3만 년의 나이를 먹은 수안보온천과의 만남을 절묘하다고 했다. ‘수안보온천 시조문예축전’은 그래서 생겨났다. 올해까지 2회에 걸쳐 행사를 치렀다. 온통 수안보를 기리는 시조가 넘쳐났다.

 전국에서 모여든 이 시대 저명한 시조시인은 물론이려니와 전국시조백일장을 통해 선발된 신인들까지 한 목소리로 수안보의 온천과 벚꽃, 그리고 미륵리 사지를 노래했다.

 이곳을 노래한 시조 ‘수안보 속말’은 가곡으로 작곡되어 지난 12월 5일에는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토파즈 홀에서 개막곡으로 불려졌다. 신작 가곡의 향연, ‘임긍수 가곡 음악회’였다. 또한, 본인은 올해 신년 경축시조 ‘계명산 해돋이’를 비롯하여 충주에 있는 문화재, 명승지, 강산 등에 관한 예찬시조를 지어 이곳 지역신문에 시집 1권 분량은 족히 될 만큼 기고해왔다.

 그런데 한국시조문학진흥회는 이곳 문화예술당국으로부터 직접 공식 지원금을 받아보지 못했다. 이미 제1, 2회 ‘수안보온천 시조문예축전’을 성공리에 치러 전국으로 충주시 수안보가 홍보되었지만 그랬다. 이유는 단 하나, 한국시조문학진흥회가 서울시에 등록된 단체이기 때문이란다.

 한국시조문학진흥회는 2004년 시조시인단체로는 최초로 서울시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그러나 활동은 전국을 대상으로 해왔다.

서울, 아산, 단양, 수안보 등이 그 활동 무대였다. 집행 임원이나 회원은 전국 각지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해외에까지 회원이 있다. 지금은 수안보가 주된 활동지다. 그런데도 서울시에 등록되었으니 서울시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거기서만 활동하라는 것인가?

 이는 마치 요즈음 역사책 국정화 문제에 비유해볼 수 있다. 근현대사가 문제가 되고 있지만, 지금은 온 세계가 교통하는 시대, 세계 각국 현지에서 발굴되는 유물로써 입증되는 시대다.

아직도 고증사학 또는 통설이니 다수설이니 하면서 제 나라 고대사를 기원 전 108년 평양 대동강 유역에서 한사군의 지배로부터 비롯되었다고 기술할 것인가? 같은 이치로 수안보와 상생하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온 한국시조문학진흥회를 서울시에 등록된 단체라 하여 지원 대상에서 배제할 것인가? 전국을 발판으로 하는 큰 단체가 수안보라는 한 지역에 와서 지역 온천제 행사와 더불어 축전을 치르는 것을 환영은 못할망정 터부시해서야 될 일인가? 지금은 어느 분야든 세계화를 향해 문호를 활짝 열고 외국인도 맞아야 할 판국인데, 정작 자기나라의 고유한 문학예술진흥단체를 멀리해서야 되겠는가.

이래서야 지역문화예술이 융성할 수 있을까? 세계무술공원을 만들어놓고 세계무술축제를 여는 이곳에서 제 나라의 전통시조가 푸대접받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지금은 창의와 꿈이 실현되는 시대, 섬세한 여성성이 빛나는 시대, 다른 곳의 훌륭한 행사를 유치해도 부족할 판에 빗장을 걸어잠그니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비록 내년 예산은 이곳 문화예술당국으로부터 받지 못했지만 제1, 2회 ‘수안보온천 시조문예축전’을 잘 치른 만큼 반드시 계속되리라 생각한다.

 사람은 떠나도 시스템은 남는다. 이사장은 바뀌어도 시조문학진흥회는 남는다. 수안보온천과 시조의 만남은 천생연분이다. 3장 6구로 된, 가장 한국적인 시가인 우리 시조! 한글로 세계인에게 읊조려질 날을 기대해본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우리 시조가 수안보를 터전으로 하여 전국화, 세계화될 날이 올 것이다. 수안보가 살아나는 만큼 시조도 함께 살아나리라.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