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제 불은초등학교장.jpg
▲ 김정제 불은초등학교장
매듭달 12월에 돌아보는 2015년 교육계의 가장 큰 이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일 것이다. 교육부는 현행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바른 역사 인식을 심어 줄 수 없고, 우리 사회의 여건과 상황을 고려할 때 국정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찬반은 교육계는 물론 온 국민의 관심과 함께 갈등과 분열을 불러왔다. 지금의 좌편향 교과서로 인한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바로잡고, 일관성 있는 역사교육을 위해 국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독재와 친일 미화에 대한 우려와 다양성을 주장하는 반대론은 극심한 대립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로 인한 국민적 합의나 간극이 좁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진행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 11월 3일 국정화 방침을 최종 확정해 고시하고 집필진을 구성해 집필을 시작함으로써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이제 관심은 어떻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역사를 교과서에 담을 수 있느냐로 모아지고 있다. 공정성은 모든 사안에 대한 판단 기준의 근본이며, 상호 신뢰와 협력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고전의 백미인 사서오경 중 하나인 서경에도 사회 통합의 첫째 미덕으로 공정성을 꼽고 있다. 의인으로 중국 역사를 빛낸 백이와 숙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주의 희발은 군사를 일으켜 폭정을 일삼던 상나라의 紂(주)왕을 무찌르고 천자가 됐다.

천자가 된 무왕은 어떻게 정치를 해야 이전 나라들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고민 끝에 당시의 현자 箕子(기자)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이에 기자는 정치의 요체를 아홉 가지 洪範(홍범)으로 정리했다고, 書經(서경) 周書(주서) 洪範(홍범)편에 수록돼 있다.

 그 가운데 공정성에 해당되는 蕩蕩(탕탕)과 平平(평평)이 있는데,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의미심장하다. "無偏無黨(무편무당) 王道蕩蕩(왕도탕탕):한쪽으로 기울어지지 말라. 정치의 길이 탕탕하리라. 無黨無偏(무당무편) 王道平平(왕도평평):한쪽을 편들지 말라. 정치의 길이 평평하리라. 無反無側(무반무측) 王道正直(왕도정직):거스르지 말고 기우뚱하지 말라. 정치가 바르고 곧으리라." 蕩(탕)은 공정함에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떠드는 소리를 씻어 버린다는 뜻이고, 平(평)은 규칙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고르게 적용된다는 의미이다.

 蕩蕩平平(탕탕평평)은 영조와 정조가 당쟁이 치열하던 정국 수습을 위해 탕평책을 실시함으로써 우리에게 더욱 친근해졌다. 왕세자 시절 당쟁의 폐해를 직접 경험한 영조는 1742년(영조 18) 탕평책을 표방하고 다음과 같은 친서를 비에 새겨 성균관 반수교 위에 세움으로써 탕평의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周而弗比(주이불비) 乃君子之公心(내군자지공심):두루 친하되 편당 짓지 않는 것은 군자의 공정한 마음이고, 比而弗周(비이불주) 寔小人之私意(식소인지사의):편당만 짓고 남과 두루 친하지 않는 것은 소인의 마음이다."

 오늘 우리 사회가 민초들의 삶과 안위는 도외시한 채 당리당략에 따라 치열한 당쟁을 일삼던 영조시대와 유사한 상황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민생 걱정과 상생, 배려와 협력은 상투적인 말과 구호일 뿐, 실천하고 행동하는 모습은 갈수록 찾아보기 힘들다. 모두가 앞다퉈 공정을 주장하고, 공정한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이 공정하고, 다른 주장은 옳지 않다고 비난하고 화를 내며, 불순한 방법이나 심지어는 폭력적 수단까지 동원해 분노를 표출한다.

 매사를 옳고 그름의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로는 배려와 협력이 불가능하다. 사회는 옳고 그름만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다. 같지 않다는 것은 다름일 뿐 틀림이 아니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타협과 상생의 길은 열리는 것이다. 탕평은 곧 공정으로 이어진다.

 蕩蕩平平(탕탕평평)은 정치나 인재 등용은 물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근원이기도 하다. 상호 신뢰와 통합의 하모니로 아름다운 사회를 추구하는 주춧돌인 것이다. 우리 민족의 삶과 문화, 정신과 행적의 기록인 역사교과서가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그야말로 蕩蕩平平(탕탕평평)의 바탕 위에 집필되기를 기대해 본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